제목 | 부활 제7주간 토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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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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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6-06 | 조회수231 | 추천수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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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석삼조(一石三鳥)’라는 말이 있습니다. 돌 하나를 던졌는데 세 마리의 새를 잡았다는 뜻입니다. 뜻밖에 좋은 일이 생기는 경우를 말합니다. 제게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토요일 하루에 네 가지의 일이 있었습니다. 오전에는 장례미사가 있었습니다. 미사 후에는 집 축성이 있었고, 이어서 구역장 회의, 마지막으로는 청소년 음악회까지 있었습니다. 아침 9시에 집을 나섰고, 저녁 10시에 사제관으로 돌아왔습니다. 피곤할 법도 한데, 마음은 오히려 충만했습니다. 왜일까요? 저는 이 네 가지 일을 돌아보며, 하느님께서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하나로 이어주셨다고 느꼈습니다. 첫 번째는 장례미사입니다. 삶의 한 여정을 마친 형제님을 위해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이 미사는 단지 죽음을 슬퍼하는 자리가 아니라, 그분의 생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감사드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인간은 기억하는 존재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억은 과거를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의미’로 바꾸는 작업입니다. 장례미사는 바로 그런 작업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한 사람의 생애를 감사로 바꾸는 시간입니다. 그러기에 죽음은 끝이 아니라, 주님 품 안에서 영원으로 가는 새로운 시작입니다. 두 번째는 집 축성입니다. 괌에서 막 이사 온 가정이었습니다. 아직 교적도 없고, 가구도 없었지만, 축복은 가득했습니다. 어떤 본당에서는 교적이 없다는 이유로 축성을 거절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생각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소속을 보시기 전에, 우리의 마음을 먼저 보신다. “존재는 환대에서 피어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손님을 환대했습니다. 손님은 아브라함이 곧 아이를 가질 것이라고 축복해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아이를 얻는 기쁨을 얻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강도당한 사람을 도와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을 이야기하셨습니다. 가난하고, 굶주리고, 강도당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주님께 해 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축성은 환대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은 이곳에 잘 오셨습니다’ 하고 말해주는 일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하느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으며 살아가는 것이 현재의 신앙입니다. 세 번째는 청소년 음악회였습니다. 어색하고 서툰 손놀림, 떨리는 음표, 아직은 조금 부족한 표현력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그런 모습이 더 감동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미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희망은 두 딸을 두고 있다. 하나는 분노요, 다른 하나는 용기다”고 말했습니다. 분노는 지금 부족함에 대한 성찰이고, 용기는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발돋움입니다. 청소년들의 연주는 그런 희망의 시작이었습니다. 서툴지만, 순수했고, 그래서 아름다웠습니다. 네 번째는 구역장 회의였습니다. 저는 이 회의를 다리(bridge)라고 생각합니다. 본당과 구역, 사제와 신자, 하느님의 말씀과 생활의 목소리를 잇는 연결의 다리입니다. “다리는 강을 피하지 않는다. 강을 품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의견, 다양한 사연, 때로는 불만까지도 사랑으로 이어주는 다리가 본당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역장 회의를 통해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연결되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사람들을 맞아들이며,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담대히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했습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주어진 시간을 복음으로 바꾸는 사람이었습니다. 집은 감옥이었지만, 그의 영혼은 자유로웠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이 말씀은 곧 ‘비교하지 말고,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을 충실히 살아라.’라는 말씀입니다. 장례미사를 통해 과거를 봉헌하고, 집 축성을 통해 현재를 축복하며, 구역장 회의로 본당과 구역을 이어주는 다리를 놓고, 청소년 음악회로 미래의 희망을 품었던 하루였습니다. 그 하루 속에서 저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너는 나를 따라라.” 우리 각자의 삶도 그렇습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과 자리, 그 모든 순간이 바로 하느님 은총의 통로입니다. 오늘도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과거를 감사로, 현재를 기도로, 미래를 희망으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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