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7주간 금요일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요한 21,18) 이 말씀이 오래도록 마음에 머뭅니다. 이 구절은 베드로의 순교를 예고하는 말씀이지만, 나에게는 ‘자기중심적 자유’에서 ‘타자 중심의 사랑’으로 존재가 성숙해 가는 여정으로도 들려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성당에 다니며 다양한 봉사와 단체 활동을 해왔습니다. 그래서인지 헌신하는 삶은 당연한 것이었고, 그 당위가 신앙의 중심이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왜 헌신해야 하는지 깊이 묻기보다는, 헌신하고 양보해야 한다는 말에 익숙해졌습니다. 그러다 문득 질문이 생겼습니다. ‘나는 왜 그렇게 살아왔을까?’ ‘하느님은 자유의지를 주셨는데, 나는 왜 선택 없이 살았던 걸까?’ 그 질문 끝에서 어떤 이들은 교회를 떠나기도 합니다. ‘신앙은 내 삶을 제한하고, 나를 도구로 삼은 게 아닐까?’ 그렇게 자신을 찾아 떠나는 이들을 봅니다. 그러나 떠났다가도, 삶의 굴곡 속에서 우리는 실패의 기억, 죄책감, 상실감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교회로 돌아오지 못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바로 그 ‘멀어진 이들’을 다시 부르시는 하느님의 방식, 사랑의 근원이신 분께로 되돌아가는 존재 회복의 여정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넘어진 제자에게 다시 묻습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이나 반복된 이 물음은 과거의 넘어짐을 끄집어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랑의 기억을 다시 불러일으키기 위한 초대입니다. 첫 번째 물음은, 추억 속 서랍에 잠들어 있던 사랑의 기억을 꺼내게 합니다. 두 번째 물음은, 내가 정말 사랑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합니다. 세 번째 물음은, 그 사랑을 지키지 못한 아픔 앞에 마주 서게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사랑이 다시 시작되는 곳은, 나를 넘어서 타인을 향한 돌봄과 책임의 자리입니다. 그 길은 때로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우리는 점점 ‘나’ 중심에서 ‘너’에게로 향하는 존재로 성숙해 갑니다.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이 말씀은 억압이 아니라 사랑의 끌림입니다. 의무가 아니라, 사랑이 우리를 타인에게로 이끌어가는 여정입니다. 그 길의 끝에서 예수님은 다시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라.” 오늘 복음을 묵상하며, 저는 이렇게 느낍니다. 헌신은 더 이상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라 사랑에 의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마음, ‘나로부터 빠져나와 너에게로 향하는 끌림’이구나, 그 끌림의 근원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사랑이십니다.

『녹는 쪽으로 흐른다』
닫혀 있던 자아가 사랑이라는 온기에 이끌려 서서히 녹아 흐르는 과정을 그려보았어요.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라는 말씀은 자기중심에서 타자 중심으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으로 제게 비추어 쳤네요. 얼어붙은 감정과 마음의 모서리가 하나둘 풀어지고, 결국 사랑 앞에 조용히 흘러가는 ‘물줄기’로 변화하는 여정은,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법한 내면의 치유와 회복을 떠올리게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