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송영진 신부님_<우리는 사도들의 증언이 진리라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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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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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6-07 | 조회수99 | 추천수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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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도들의 증언이 진리라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돌아서서 보니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따라오고 있었다. 그 제자는 만찬 때에 예수님 가슴에 기대어 앉아 있다가, ‘주님, 주님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던 사람이다. 그 제자를 본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형제들 사이에 이 제자가 죽지 않으리라는 말이 퍼져 나갔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가 죽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 제자가 이 일들을 증언하고 또 기록한 사람이다.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이 밖에도 많이 있다. 그래서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하면, 온 세상이라도 그렇게 기록된 책들을 다 담아 내지 못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요한 21,20-25).”
1) 우리 교회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를 ‘사도 요한’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사도 요한을 다른 제자들보다 더 사랑했다는 말은 아니고, 사도 요한의 입장에서 자신이 받은 예수님의 사랑을 표현한 말로 해석됩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차별하거나 편애하시는 분이 아니고,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라는 말씀은, “다른 사람의 직무를 존중하여라. 너는 너 자신의 직무만 충실하게 수행하여라.”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는 각 개인에게 알맞은 성소를 주시는데, 다른 사람의 것을 질투하거나 시기하면 안 되고, 자신이 받은 성소에 충실하게 응답하는 것만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으로 해석됩니다. 이것은 ‘탈렌트의 비유’에서, 주인이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탈렌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탈렌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탈렌트를” 준 일과 같습니다(마태 25,15).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직분은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그리하여 어떤 이에게는 성령을 통하여 지혜의 말씀이,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에 따라 지식의 말씀이 주어집니다(1코린 12,4-8).” “이 모든 것을 한 분이신 같은 성령께서 일으키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자에게 그것들을 따로따로 나누어 주십니다(1코린 12,11).” “사실 지체는 많지만 몸은 하나입니다(1코린 12,20).”
2) “형제들 사이에 이 제자가 죽지 않으리라는 말이 퍼져 나갔다.” 라는 말은, “당시의 교회 공동체에, 이 제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 예수님의 재림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말이 퍼져 나갔다.” 라는 뜻입니다. <사도 요한이 죽지 않을 것이라는 말은,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죽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고, 사도 요한이 살아 있는 동안에 예수님의 재림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재림이 ‘곧’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희망, 또는 기대감을 나타낸 말입니다. <당시의 신자들은 적어도 사도들 가운데 한 명이라도 살아 있는 동안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재림이 하루라도 ‘빨리’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희망이었습니다.>
3) “이 제자가 이 일들을 증언하고 또 기록한 사람이다.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라는 말은, 20절에서 말한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는 ‘사도 요한’이며, 그가 기록한 요한복음은 ‘참된 증언’, 즉 ‘구원의 진리’ 라는 뜻입니다. 24절의 말은, 사도 요한의 말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요한복음에 덧붙인 말일 수도 있는데, 어떻든 요한복음은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해 주는 ‘진리’ 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 말은, 20장에 있는 다음 말에 연결됩니다.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20,31).” 이 말은, 복음서를 기록한 이유,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와 목적을(신앙생활의 목적을) 나타낸 말입니다. 예수님을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믿는 것은,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믿는 것입니다.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사도 4,12).”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세속의 부귀영화를 얻어 누리기 위한 것도 아니고, 좀 더 편하고 풍족하게 살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현세만을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허무한’ 인생에서 벗어나서 ‘영원한’ 인생으로 가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 ‘영원한’ 인생은, ‘영원’에서 오신 분만이, 즉 하느님이시며 주님이신 분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바로 그분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요한 6,68).”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부활 제7주간 토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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