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송영진 신부님-<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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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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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6-08 | 조회수161 | 추천수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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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19-23)”
1) 요한복음에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성령을 주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요한 20,22), 사도행전에는 예수님 승천 후, 오순절 때에 성령이 내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사도 2,1-3). 그 일에 대해서는, 사도들이 성령을 두 번 받은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에게서는 성령을 받고, 오순절 때에는 ‘성령의 은사’를 받은 것으로 해석합니다. <우리가 세례성사를 받을 때에 성령을 받고, 견진성사를 받을 때에 ‘성령의 은사’를 받는 것과 비슷할 것입니다.>
2) ‘유대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던 제자들의 모습은, 예수님 죽음 후에, 자기들도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두려워하는 모습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이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 모습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사도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모든 두려움에서 해방되었고, 믿음의 완성 단계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서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신앙을 증언한 것은 오순절 때부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때부터 성령 강림까지의 기간은, 본격적으로 복음 선포 활동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 기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사도들은 ‘기도에 전념’했습니다(사도 1,14).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신앙인들이 해야 할 첫 번째 준비는, 또는 준비 기간 동안에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기도’입니다.>
3) 성령 강림 때에 일어난 일은, 복음 선포, 언어의 소통, 회개, 신자 수 증가입니다.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그러자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성령께서 표현의 능력을 주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사도 2,3-4).” “그때에 예루살렘에는 세계 모든 나라에서 온 독실한 유다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 그들은 놀라워하고 신기하게 여기며 말하였다. ‘지금 말하고 있는 저들은 모두 갈릴래아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 우리가 저마다 자기가 태어난 지방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인가?(사도 2,5.7-8)”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꿰찔리듯 아파하며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형제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이 약속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손들과 또 멀리 있는 모든 이들, 곧 주 우리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이에게 해당됩니다.’ 베드로는 이 밖에도 많은 증거를 들어 간곡히 이야기하며, ‘여러분은 이 타락한 세대로부터 자신을 구원하십시오.’ 하고 타일렀다. 베드로의 말을 받아들인 이들은 세례를 받았다. 그리하여 그날에 신자가 삼천 명가량 늘었다(사도 2,37-41).”
4) 그날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사도들이 배우지도 않은 외국어를 갑자기 잘 할 수 있게 된 것인지, 어떤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나서 언어의 장벽이 사라진 것인지......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는 이야기를 보면, ‘성령의 은사’는 사도들에게 내렸지만,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은 청중에게 더 많이 내렸습니다. 사도들이 여러 언어로 설교를 했다는 점보다 그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가 태어난 지방 말로 들었다는 점이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 설교를 믿고 받아들여서,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는 점이 가장 중요합니다.
5) 그날 신자가 삼천 명가량 늘었지만, 안 믿고 그냥 가버린 사람들의 수는 그보다 더 많았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은총은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만 은총으로 작용하고,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립니다.
6) 성령에 대해서 말할 때, 모든 일을 다 성령께서 알아서 해 주시는 것처럼 표현하는 이들이 있는데, ‘성령의 은사’에 ‘인간의 응답’이 합해져야 구원 사업이 이루어집니다. 사도들 경우에, 숨어 있던 방에서 나가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신앙을 증언하는 일을 한 것은, 그들 자신들의 자유의지로 한 일입니다. <성령에 사로잡혀서, 자유의지 없는 로봇처럼 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그렇게 ‘능동적으로’ 움직일 때 성령께서는 그들이 하는 일을 도와주셨습니다. 만일에 ‘성령의 은사’를 받은 뒤에도 사도들이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었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성령 강림 대축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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