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10주간 목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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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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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6-12 | 조회수192 | 추천수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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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0주간 목요일] 마태 5,20ㄴ-26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오늘 복음 속 예수님 말씀을 듣고 있자니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는 것 같습니다.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성질을 부렸는지 모릅니다. 신문기사를 읽으면서, 방송을 보면서, 운전을 하면서 마음 속으로 다른 이를 향해 욕설과 비난을 내뱉은 경우가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사람은 ‘불 붙는 지옥’에 넘겨진다고 하시니 이 일을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는 꼼짝 없이 ‘지옥행’이 확정된 걸까요?
하지만 사랑과 자비의 주님께서 단순히 그런 의미로 말씀하신 게 아니지요. 세상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새 포도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유다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있던 기존의 관행이나 사고방식을 말 그대로 완전히 뒤집어 놓으십니다. 오늘 복음도 그런 경우이지요. 유다교의 전통과 율법에 따르면 살인자는 사형에 처해야 했습니다. 남의 집에서 키우는 짐승을 죽인 이는 살아있는 짐승으로 되갚아야 했습니다. 동족의 팔을 부러뜨린 사람은 자기 팔도 부러뜨려야 했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고대 근동지방의 동태복수법이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원칙을 완전히 뒤집어 엎는 사랑의 계명을 선포하십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만 가지고 다른 사람을 심판하고 똑같은 물질적 가치로 보상하게 만드는 법으로는 참된 의로움에 이를 수 없다는 겁니다. 하느님은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을 보시기에, 예수님은 겉으로 드러나는 피해나 결과보다 그런 상황을 초래하는 못된 마음을 고쳐먹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다른 이의 입장을 헤아리지 않는 이기적인 마음, 타인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교만한 마음, 자기만 옳다 여기며 다른 이를 심판하고 배척하는 독선, 물리적인 피해만 입히지 않으면 형제를 미워해도 괜찮다 여기는 안일한 마음... 그런 못된 마음을 품는 것이 살인과 다를 바 없는 큰 죄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고 행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들어, 외적 행동의 의로움만 추구하지 말고, 내적 지향의 의로움을 지향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지 않는다고 해서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제대로 지킨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 기분만 생각하며 다른 이에게 함부로 성질을 부리거나, 다른 사람을 무시하며 막말과 욕설을 내뱉으면, 그런 일을 당한 형제는 나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가 그런 그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고 풀어주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마음 속 미움과 분노가 점점 더 커져 언젠가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표출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살인자’가 되고 마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예수님은 애초에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말과 행동을 삼가라고 하십니다. 어쩔 수 없이 그런 상황이 벌어졌다면 다른 모든 일을 제쳐두고 나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형제를 찾아가 진심으로 사과하고 사랑과 진심으로 그의 마음을 보듬어주어 화해하라고 하십니다. 결국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의 근본정신은 용서와 화해를 통해 형제애를 누리는데에 있는 겁니다. 그러니 이 성찬례를 거행하기 전에 내가 불목하고 있는 형제는 없는지, 나의 말과 행동으로 인해 상처받은 이웃은 없는지 헤아려봐야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태를 오래 방치하지 말고 최대한 빨리 용서를 청하고 화해해야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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