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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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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5-06-14 조회수117 추천수5 반대(0)

제가 좋아하는 한문 성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라는 말입니다. “선을 쌓는 집에는 반드시 복이 따른다라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도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바라시지, 벌을 먼저 내리시려는 분은 아니십니다. 우리 교리에도 상선벌악(賞善罰惡)’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착한 이를 상주시고 악한 이를 벌하신다는 말인데, 이 말의 핵심은 상주심에 있습니다. 아시안 성당들이 모여서 주교님과 함께 다문화 미사를 했었습니다. 다음 주에 평가회 겸 식사 자리가 있어서 참석했습니다. 공동체에서 성직자가 참석한 성당은 달라스 성당뿐이었습니다. 그곳 성당은 9월에 성전을 새로 지어서 이사 간다고 했습니다. 지금 성전의 의자가 좋아 보였습니다. 본당 신부님에게 새로 성전 지으면 지금 성당의 의자를 옮겨가는지 물었습니다. 본당 신부님은 새 성전에는 새 의자를 마련한다고 했습니다. 그때 한가지 떠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지난 4월에 오스틴의 한인 성당을 방문했을 때입니다. 그 성당은 성당에 긴 의자가 없었습니다. 몇 년 전에 큰 비가 내려서 의자가 모두 상해서 버렸다고 합니다. 새로 의자를 마련하려면 8만 불이 넘게 든다고 합니다. 본당 재정상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오스틴 본당 신부님께 연락했습니다. 운송비만 있으면 좋은 의자를 가져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평가회에 참석했더니 이렇게 좋은 일이 생겼습니다. 감사하면 감사할 일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보면 주님께서 축복을 주시는 것 같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의 눈에는 기회가 보이고, 미워하는 사람의 눈에는 불만만 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아들의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아버지가 큰아들에게 밭에 가서 일하도록 말하였습니다. 큰아들은 안 가겠다고 했지만, 마음이 바뀌어서 밭에 나가 일했습니다. 둘째 아들은 가겠다고 했지만, 마음이 바뀌어서 밭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 아버지의 마음에 드는 아들이냐고 물었습니다. 사람들은 밭에 나가서 일한 큰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오감이 있어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손으로 만지고, 입으로 맛을 봅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어쩌면 마음으로 보고, 마음으로 듣고, 마음으로 냄새 맡고, 마음으로 만지고, 마음으로 맛을 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삼위일체인 하느님은 바로 마음으로 소통하는 분입니다. 그래서 사제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과 함께그러면 공동체는 이렇게 응답합니다.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

 

예수님의 은총은 성사로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칠성사를 제정하셨습니다. 칠성사는 우리의 삶이 신앙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게 해 줍니다.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지난날의 죄를 용서받습니다. 견진성사로 우리의 신앙은 더욱 견고해 집니다. 고백성사로 우리는 죄를 뉘우치며, 하느님께 용서받습니다. 성체성사로 우리는 주님을 모실 수 있습니다. 병자성사로 우리는 위로 받습니다. 혼인성사로 우리는 하느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신품성사로 우리는 교회의 봉사자를 뽑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가 바로 성사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하느님의 사랑은 죄인까지도 품어 주는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고통과 수난까지도 감수하는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끝까지 믿어 주시는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열정적인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어 줍니다. 성령의 친교는 은사로 드러납니다. 은사에는 슬기, 통달, 의견, 지식, 굳셈, 효경,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 은사는 사랑, 기쁨, 평화, 친절, 인내, 선행, 지식, 온유, 절제로 열매 맺습니다.

 

이런 삼위일체의 은총, 사랑, 친교가 있기에 우리의 신앙은 절망 중에서도 희망을 보고, 고통 중에서도 인내할 수 있고, 두려움 속에서도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권한을 예수님께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권한을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사용하셨습니다. 성령은 이제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를 따뜻하게 감싸 주시고, 용기와 힘을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초대교회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고, 삼위일체 하느님은 교회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가정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친교, 나눔, 사랑이 드러나는 가장 이상적인 공동체입니다. 아빠의 권위는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하여 행사되어야 합니다. 엄마의 사랑은 가족들을 위한 배려와 희생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아빠의 보살핌과 엄마의 사랑을 받은 자녀들은 가정의 미래가 될 것입니다. 성호경을 할 때마다, 영광송을 바칠 때마다 삼위일체의 신비를 살도록 다짐하고 그 은총을 구해야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의 신앙을 눈으로만, 귀로만, 머리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마음으로, 삶으로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진정으로 삼위일체 하느님의 은총 안에 살아가는 자녀가 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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