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이전글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4|  
다음글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하느님 중심의 겸손한 수행들 “올바른 자선, |2|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5-06-18 조회수123 추천수3 반대(0) 신고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마태 6,1-6.16-18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우리는 어제까지 며칠에 걸쳐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의로움을 능가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과 그 내용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그 가르침을 마무리하시면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참된 의로움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를 그렇게 만드시는 분이 누구인지를 알려주십니다. 참된 의로움에 다다르기 위한 출발점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는 의로움의 본질이 자기 자신을 거룩하고 올바르게 보이도록 ‘연출’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과 온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임을 알려주지요. 즉 의로움이란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한 ‘처신’이 아니라, 한 없이 부족하고 약한 피조물로써 창조주이신 하느님 앞에 서야 하는 나의 ‘처지’인 겁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보시고, 우리가 꽁꽁 숨겨둔 것도 다 꿰뚫어 보시는 분이니 그 점을 분명히 생각하며 행동해야 하지요.

그러나 유다인들, 특히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대우를 받는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자선과 기도와 단식이라는, 종교적 덕행을 실천함에 있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데에 집중하지 않고, 자신의 종교적 거룩함과 도덕적 의로움을 사람들에게 드러내보이고 인정받는데에만 신경을 쓴 겁니다. 이처럼 지향 자체가 잘못되었기에 자선과 기도와 단식이라는 좋은 덕행을 실천하면서도 하느님과의 관계를 올바르고 친밀하게 회복하지 못하고, 오히려 교만과 위선으로 인해 하느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게 되었지요.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다른 이들보다 거룩하고 의롭다고 착각하며 으스댔습니다. 또한 그런 모습이 그들을 본받고 따르려는 사람들에게 ‘나쁜 표양’이 되어 그들마저도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상’이라는 결과물을 얻지 못해도, 내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한점의 후회도 남기지 않는다면, 그 노력 자체가 내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보상이자 결실입니다. 그러지 못하고 결과에 집착하거나 남들에게 잘 보이는데에만 신경 써서는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 앞에서 부끄러워질 일만 늘어날 뿐입니다. 사람들로부터 대단하다고 인정을 받고 잘했다고 칭찬을 받으면 마음이 우쭐해지고 기분좋아질 수는 있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내가 실수하고 잘못을 저지르는 순간 칭찬은 비난으로 바뀌고, 인정은 빈정거림과 비아냥으로 변하지요. 그러니 우리는 하느님만 바라보며 하늘의 가치를 추구해야 합니다. 세상 것들은 언젠가 변하고 사라지지만, 하늘의 가치는 영원토록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으로써 기도를 하든 단식을 하든 자선을 베풀든, 그 자체가 나에게 기쁨이 되고 보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참된 기도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하고, 아낌없이 베푸는 자선은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하며, 음식이 아니라 탐욕을 끊는 단식은 내 안에 있는 욕심과 집착을 비워내고 나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합니다. 그러기 위해 중요한 건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언제 어디서나 나와 함께 하신다는 분명한 현존의식 안에서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충만한 기쁨과 행복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