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아이가 밥만 잘 먹고 공부만 잘하면 사회생활도 잘할 수 있을까?
이전글 이전 글이 없습니다.
다음글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신비 관상 체험 “날마다 주님과 새로운 은총의 |1|  
작성자김백봉 쪽지 캡슐 작성일2025-07-15 조회수111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5년 다해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아이가 밥만 잘 먹고 공부만 잘하면 사회생활도 잘할 수 있을까?>

 

 

 

복음: 마태오 11,25-27

 






하느님의 아들이며 말씀이신 그리스도

(1540-1550), 모스크바 크레믈린 Cathedral of the Sleeper

 

 

 

  

 

    찬미 예수님!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지혜와는 정반대의 말씀을 하십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마태 11,25) 

아버지는 철부지들에게 어떤 것을 드러내 보이실까요? 예수님은 진리를 증언하러 오셨다고 합니다. 그 진리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인간이 되시지 않으셨다면 알 수 없는 ‘삼위일체 신비’입니다. 

 

 

    우리는 ‘삼위일체’ 교리를 그저 외워야 하는 딱딱한 공식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 저는 이 삼위일체 신비를 아는 것이, 이 세상과 하느님 나라에서의 우리 운명을 결정짓는 가장 절박하고 실질적인 ‘생존의 문제’임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모든 아이에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첫 번째 공부는 ‘부모님의 관계’를 배우는 것입니다. 이는 선택 과목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과목입니다. 아이는 부모가 서로를 어떻게 사랑하고 신뢰하며 용서하는지를 본능적으로, 그리고 필사적으로 공부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신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서 좋은 관계를 맺고 살아남는 유일한 교과서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순히 감상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범죄 연구 중 하나는 하버드 법대의 셸던과 엘리너 글루크 부부 교수가 수십 년간 진행한 연구입니다. 그들은 청소년 범죄에 영향을 미치는 수백 가지 요소를 분석한 결과, 가장 결정적인 변수는 가난이나 거주 지역이 아니라 바로 ‘가정의 관계적 요인’임을 밝혀냈습니다. 

 

 

    어떤 사회복지사가 말해준 내용입니다. 평생을 소년원에서 아이들을 상담해 온 그분은, 아이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되돌려주지 않아도 되는 사랑을 받아본 경험’이라고 했습니다. 한번은 한 아이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아빠가 엄마를 때리고, 엄마는 저를 버렸어요. 사랑이 뭔데요? 그걸 어떻게 하는 건데요?” 이 아이에게 세상은 약육강식의 정글이었고, 관계는 빼앗거나 빼앗기는 전쟁이었습니다. 사랑의 모델을 보지 못했기에, 그는 사랑을 표현하는 법을 몰라 주먹을 휘두르는 방식으로 세상을 대한 것입니다.

 

 

    반대로, 비록 가난한 단칸방에 살았지만, 서로를 끔찍이 아끼는 부모님 밑에서 자란 한 자매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아버지는 퇴근길에 늘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풀빵 한 봉지를 사 오셨고, 어머니는 그 풀빵을 받으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으셨다고 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자란 자매는 ‘사랑은 크고 화려한 것이 아니라, 작고 따뜻한 관심이구나’ 하는 것을 온몸으로 배웠습니다. 훗날 이 자매는 커서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부모의 관계를 공부한 아이는 세상을 살아갈 튼튼한 뿌리를 갖게 됩니다.

 

 

    20세기 미국 가톨릭의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한 명인 도로시 데이의 삶은 이 진리를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녀는 젊은 시절 급진적인 사회운동가로 살며 하느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남자와의 사이에서 딸 ‘타마르’를 낳았을 때, 그녀의 마음에는 이전에는 없던 거대한 바람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이 작고 연약한 딸에게 자신이 줄 수 없는 영원하고 안정적인 사랑의 공동체, 즉 ‘가족’을 선물하고 싶다는 열망이었습니다. 그녀는 딸이 불완전한 자신을 넘어서는 더 큰 사랑의 관계 안에서 보호받기를 바랐습니다. 이 열망은 그녀를 가톨릭교회로 이끌었고, 결국 그녀는 딸에게 세례를 주고 자신도 신자가 되었습니다. 이 선택 때문에 사랑하는 남자와 헤어져야 하는 큰 아픔을 겪었지만, 그녀는 삼위일체 신비를 자신과 딸 사이에 적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잘 살려면 부모의 관계를 잘 배워야 하고, 하느님 나라에서 잘 살려면 하느님 삼위일체 신비를 알아야 합니다. 창세기에서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창세 1,26) 하시며 당신의 모습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이는 남자와 여자가 이루는 사랑의 일치가 바로 성부, 성자, 성령께서 이루시는 사랑의 관계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온갖 지식과 정보에는 기꺼이 무관심하고, 오직 부모의 관계 맺는 법에만 필사적으로 관심을 갖는 아이처럼 되어야 합니다. 

미국의 젊고 유능한 신경외과 의사였던 폴 칼라니티의 자전적 소설 『숨결이 바람 될 때』는 이에 대한 깊은 울림을 줍니다. 그는 뇌과학의 정점에 있던 ‘지혜롭다는 자’였지만, 폐암 말기 선고를 받고 죽음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 그가 쌓아온 모든 의학 지식이 자신에게 진정한 답을 주지 못함을 깨닫습니다. 

 

 

    그를 구원한 것은 복잡한 뇌 지도가 아니라, 아내와의 사랑, 갓 태어난 딸아이의 숨결, 그리고 그가 다시 마주하게 된 하느님과의 관계였습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 세상의 가장 ‘지혜로운 자’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갈망하는 ‘철부지’가 되어 평화를 얻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삼위일체 교리를 어려운 신학 공식으로 치부해 버립니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아이에게 ‘너희 부모님이 어떻게 사랑하는지는 알 필요 없어. 그냥 밥 잘 먹고 공부만 잘하면 돼.’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 말입니까. 부모의 사랑을 모르고는 아이가 제대로 살아갈 수 없듯, 삼위 하느님의 사랑의 관계를 모르면 우리의 영혼은 결코 하느님 나라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