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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송영진 신부님_<예수님은 언제나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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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5-07-22 조회수136 추천수2 반대(0) 신고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요한 20,1-2)”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그렇게 울면서

무덤 쪽으로 몸을 굽혀 들여다보니 하얀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님의 시신이 놓였던

자리 머리맡에, 다른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그들이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하고 묻자,

마리아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뒤로 돌아선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이신 줄은 몰랐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리아는 그분을 정원지기로 생각하고,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말로 ‘라뿌니!’ 하고 불렀다. 이는 ‘스승님!’이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요한 20,11-18).”

1)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 부활의 첫 증인’이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기쁜 소식을 처음으로 선포한

‘첫 선포자’로서 우리 교회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막달레나가 예수님 부활의 첫 증인이며

첫 선포자가 된 것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당신이 교회의 반석으로 임명하신 베드로

사도에게 그 일을 시키시지 않고, 또는 다른 사도들에게

그 일을 시키시지 않고, 막달레나에게 시키셨을까?

아마도 막달레나에게는 사도들보다 더 뛰어난 점들이,

또는 사도들보다 앞서는 점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반대로 표현하면, 사도들에게는 막달레나보다

부족한 점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막달레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는 헌신, 예수님에 대한 사랑 등에서 사도들보다,

또 다른 신앙인들보다 앞서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최후의 만찬 때 사도들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다고 장담했습니다.

“...... 베드로가 더욱 힘주어 장담하였다.

‘스승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결코 스승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다른 이들도 모두 그렇게 말하였다(마르 14,31).”

그랬는데,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체포되실 때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났고(마르 14,50),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마르 14,66-72).

그러나 막달레나는 ‘끝까지’ 예수님 곁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요한 19,25).”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아침에, 막달레나는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베드로 사도와

요한 사도에게 알렸는데, 두 사도는 무덤이 비어 있음을

보았으면서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냥 되돌아갔고,

막달레나만 무덤에 남아 있었습니다.

만일에 그때 베드로 사도와 요한 사도가 막달레나와 함께

남아 있었다면, 두 사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막달레나와 함께 만났을 것입니다.

2)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셨을 때 막달레나가 곧바로

알아보지 못하고 몇 번의 대화를 나눈 뒤에, 또 예수님께서

이름을 불러 주신 다음에야 알아본 것은, 그만큼 예수님의

부활은 믿기 힘든 놀라운 일이었음을 나타냅니다.

또 당시에는 아직 아무에게도 부활 신앙이 없었음을

나타내기도 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고

만나는 것은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셔야만

하는 일이라는 것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막달레나의 열망과 사랑이 더욱더 커지게 하려고,

예수님께서 일부러 뜸을 들이신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것은 너무 지나친 해석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드러내시는 일을 의도적으로 늦추신 것이

아니라, 막달레나 쪽에서 뒤늦게 알아본 것일 뿐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3) 원래 예수님은 우리가 찾아다녀야만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니라, 당신이 먼저 우리를 찾아오신 분입니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묵시 3,20).”

부활하신 예수님은 언제나 항상 우리와 함께

살아 계시는 분이라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도 믿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현존도

믿는 것이 바로 부활 신앙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가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야고 4,8).”

누구든지 능동적으로 주님께 가까이 가려는 노력을 하면,

‘이미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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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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