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씨 뿌리는 사람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
이전글 엘리사의 매일말씀여행(마태 13,1-9 /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다음글 오늘의 묵상 (07.23.수) 한상우 신부님  
작성자선우경 쪽지 캡슐 작성일2025-07-23 조회수91 추천수5 반대(0) 신고

2025.7.23.연중 제16주간 수요일                                                         

 

탈출16,1-5.9-15 마태13,1-9

 

 

씨 뿌리는 사람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

 

 

오늘부터 당분간 계속될 마태복음 13장은 모두 하늘 나라의 비유들입니다. 오늘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입니다. 하늘 나라의 비유를 통해 은연중 드러나는 예수님의 삶입니다. 여기서 생각나는 프랑스의 작가 장 지오노가 1953년 발표한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입니다. 프로방스의 알프스 끝자락에 있던 어느 메마르고 황량한 계곡에서 양치기 노인이 반백년 동안 꾸준히 나무를 심어 마침내 풍요로운 숲으로 변모시켰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복음의 씨뿌리는 사람의 분위기와 흡사합니다. 결코 일희일비하지 않고 한결같이 노력을 다하는 모습이 씨뿌리는 사람을 닮았습니다. 씨뿌리는 사람은 바로 끊임없이 한결같이 말씀의 씨를 뿌렸던 신망애의 사람, 예수님을 지칭한다 싶습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 하늘 나라의 살 수 있는 삶의 지혜를 배웁니다. ‘내일 세상의 종말이 와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삶의 자세도, 또 예전 어느 대통령이 대선 후보시 ‘농부는 빝을 탓하지 않는다’는 말도 생각납니다.

 

오늘 씨부리는 사람의 하늘 나라 비유의 초점은 밭도 씨앗도 아닌 사람입니다. 영적일수록 현실적이라 했습니다. 하느님처럼 넓고 깊은 시야를 지닌 낙관적 긍정적 사람이요 결코 일희일비하지 않고 현실에 지극히 충실한 이상주의적 현실주의자입니다. 넓고 깊은 시야를 지녔음과 동시에 지금 여기에 지극히 충실한 ‘카르페 디엠’의 책임적 존재요 ‘아모르 파티’ 운명애의 사람이기도 합니다. 예전 ‘봄(관;觀)이란 자작시도 생각납니다.

 

“전체를 보는 것이다

 삶은 흐른다

 삶은 지난다

 애정어린 그윽한 시선으로 보는 것이다

 

 삶의 규칙따라 삶의 리듬따라 사는 것이다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이다

 끝없이 기다리며 인내하는 것이다

 하늘 아버지의 시야를 지니고 그분의 뜻을 헤아리는 것이다

 

 가을의 황홀과 겨울의 적요

 빛과 어둠

 아름다움과 추함

 강함과 약함

 

 모두 함께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랑하는 것이다

 미풍을 태풍으로 바꾸지 않고 

 태풍을 미풍으로 바꾸는 지혜를 사는 것이다

 예수님처럼!”<1998.11.4.>

 

27년전 글에 약간 추가했습니다. 아마도 씨뿌리는 사람으로 상정되는 예수님의 시야가, 삶의 지혜가 이러했을 것입니다. 저 역시 1988년부터 지금까지 37년 동안 요셉수도원에 정주하면서 이렇게 살도록 노력했습니다. 늘 거기 그 자리 정주의 한결같은 불암산을 스승으로 삼았습니다. 때로 답답할 때 불암산과 배경의 하늘을 보면서 내적시야를 넓히려고 노력했습니다. 결코 실망, 절망, 원망한 적은 한번도 없었고 감사, 감동, 감탄의 삶이 되고자 노력했고 여기서 무수히 탄생한 선시(禪詩)같은 시들입니다. 

 

오늘 복음의 씨뿌리는 사람은 결코 오늘 탈출기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실망스런 모습이 아닙니다. 삶의 전 과정과 미래를 조망하지 못하고 짧은 안목으로 광야 여정중 불평과 불만을 터뜨리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님께 때한 신망애의 결핍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자유의 여정이 결코 쉽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아, 우리가 고기 냄비 곁에 앉아 빵을 배불리 먹던 그때, 이집트 땅에서 주님의 손에 죽었더라면! 그런데 당신들은 이 무리를 모조리 굶어 죽이려고,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왔소?”

 

예나 이제나 인간의 본질은 변함없어 보입니다. 광야 여정중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대로 오늘 우리의 모습을 반영합니다. 이에 대한 모세와 하느님의 협조와 대응의 처방이 신속하고 정확합니다. 예수님의 예표와 같은 위대한 지도자이자 중재자인 신망애의 모세요, 주님과 긴밀한 소통중에 그의 내적시야도 주님을 닮아 넓고 깊어졌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씨뿌리는 사람이 겪었던 네 종류의 밭들이 나옵니다. 물론 씨앗이 상징하는바 말씀입니다. 길바닥 땅에 떨어진 씨앗들은 새들이 먹어 버렸고, 돌밭에 떨어졌던 씨앗들은 해가 솟아오르자 타버리고 말았고, 가시덤불속에 떨어진 씨앗들은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고,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들은 백배, 예순배, 서른배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귀 있는 사람은 깊이 경청하여 삶의 지혜를 배우고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비유의 결론 같은 말씀이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 삶의 자세를 드려다 보게 합니다. 씨뿌리는 사람, 결코 완벽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이런저런 땅에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려니' 받아들이고 한결같이 끊임없이 씨뿌리는 삶에 항구했던 말 그대로 신망애(信望愛)의 사람이자 진선미(眞善美)의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씨뿌리는 사람에게서 예수님을 봅니다.

 

밭이 상징하는 바, ‘세월의 밭’, ‘공동체의 밭’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모두가 지나가는 과정입니다. 순간에, 부분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세월을 탓하지 않고, 공동체를 탓하지 않고, 실망, 절망, 원망하지 않고, 오늘 지금 여기 꽃자리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듣고 실천하고 전하면서 감사와 감동, 감탄의 삶을, 짐이 아닌 선물 인생을, 지상천국의 하늘 나라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 하늘 나라를 못살면 죽어서도 못삽니다.

 

그러니 지체하지 않고 넘어지면 곧장 일어나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탄력 좋은  파스카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저 역시 복음의 씨뿌리는 사람처럼 내외적 환경에 좌우되지 않고 평생 한결같이 써서 나눈 매일 강론 말씀들! 어디선가는 풍성한 결실로 익어갈지도 모릅니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내가 최후의 적이요 싸워야 할 적입니다. 씨뿌리는 사람이야 말로 주님의 참된 전사의 모범입니다. 날마다 주님을 따라 나를 넘어서는 자아초월의 여정, 탈출의 여정을, 끊임없이 자기를 비워가는 겸손의 여정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끝까지 주님의 전사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한결같이 씨뿌리는 삶에, 말씀을 듣고 실천하고 전하는 삶에 참 좋은 도움을 줍니다. 끝으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제 좌우명시 첫 연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하늘 향한 나무처럼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덥든 춥든, 

봄, 여름, 가을, 겨울

늘 하느님 불러 주신 이 자리에서

끊임없이, 한결같이

하느님만 찾고 바라보며 정주(定住)의 나무가 되어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살다보니 작은 나무가 

이제는 울창한 아름드리 하느님의 나무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