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 야고보 사도 축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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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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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7-24 | 조회수175 | 추천수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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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읽었던 글이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 “운명이 짐이 되면 그 무게에 눌려 주저앉게 되고, 운명을 배로 만들면 삶의 바다에 가라앉지 않는다. 운명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운명을 어떻게 대할지는 선택할 수 있다. 운명은 그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무덤이 되지만, 그것을 활용하려는 사람에게는 무기가 된다. 심장 속 희망의 스위치를 내리면 어둠에 갇히게 되지만 심장 속 희망의 스위치를 올리면 빛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언제나 운명은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온다.” 비슷한 의미로 “행운은 용기 있는 자를 좋아한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운명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다가온다는 말처럼,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야고보 사도의 삶도 운명을 개척한 여정이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던 평범한 어부였습니다. 그물과 배, 가족과 생계를 뒤로하고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시" 응답하였습니다. 운명은 우연처럼 왔지만, 그 운명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의지와 결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야고보를 사랑하셨습니다. 거룩하게 변모하실 때도, 죽은 아이를 살리실 때도, 고통스러운 밤 겟세마니 동산에서도 야고보는 주님 곁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도 중 가장 먼저 순교의 피를 흘리며, 자신의 운명을 신앙의 증거로 승화시켰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운명을 개척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세상의 힘을 통한 개척, 다른 하나는 하느님의 뜻을 따른 개척입니다. 전자는 바벨탑을 쌓는 방식입니다. 더 높이 오르고, 더 많이 쌓고, 더 많이 차지하려는 방식입니다. 이 길은 종종 승자만 살아남는 냉혹한 길입니다. 예수님을 조롱하고, 십자가로 몰고 갔던 이들이 택한 길이기도 합니다. 이 시대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추구하는 길입니다. 반면 후자는 하느님의 뜻을 향해 가는 길입니다. 아브라함이 기꺼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떠났던 길입니다. 사랑하는 아들까지도 기꺼이 주님의 제단에 바치려고 했던 아브라함이 걸었던 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약속의 땅으로 떠났던 모세가 걸었던 길입니다. 그 길에는 환난과 유혹이 있고, 그 길에는 고난과 죽음의 덫이 있을지라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기꺼이 떠났던 길입니다. 인류가 쌓아 올린 높은 도덕과 이상은 이런 운명을 개척했던 사람들의 헌신과 노력의 탑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이 길은 신화가 되었고, 종교가 되었습니다. 2000년 전에 갈릴래아에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던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길입니다.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는 영광의 길입니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부활의 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길을 걸었습니다. 수많은 성인과 성녀도 이 길을 걸었습니다. 그 길 위에 ‘교회’가 있습니다. 니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야고보 사도는 삶의 의미를 예수님 안에서 찾았고, 그 의미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쳤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는 보화를 질그릇 속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참된 신앙인의 길이며, 야고보 사도가 살았던 길입니다. 성 야고보 사도는 그 삶으로 우리에게 말합니다. “운명은 하느님의 부르심 앞에서 새로 태어날 수 있다. 섬김은 세상의 가치와 반대되는 하느님의 방식이다. 십자가는 실패가 아니라 사랑의 완성이다. 진정한 위대함은 죽음마저도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믿음에 있다.” 우리도 각자의 삶 속에서 ‘질그릇’처럼 연약할지라도, 그 안에 담긴 보화인 예수님을 믿으며, 성 야고보 사도처럼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을 살면 좋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의 운명은 무덤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으로 향하는 배가 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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