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 |||
---|---|---|---|---|
이전글 | 7월 24일 목요일 / 카톡 신부 | |||
다음글 | 양승국 신부님_신앙생활은 지속적인 깨달음의 길입니다! | |||
작성자최원석
![]() ![]() |
작성일2025-07-24 | 조회수56 | 추천수1 |
반대(0)
![]() |
신앙 생활하면서 참 어려운 것이 있다면 이성과 성령의 인도를 식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성은 논리입니다. 그러나 더 엄밀히 말하면 인간의 행위를 정당화 하려는 것이 이성에 가까이 있습니다. 논리 체계를 세상것에 비추어서 사람들이 어떤 반박을 하지 못하면 그것으로 이성은 정당한 것이 되고 신앙도 마찬가지로 정당화로 오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 혹은 선호하는 것, 희망하는 것 등의 합리 이성이라는 이름으로 부리 울 수 있고 그것이 선으로 둔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은 하느님의 것입니다. 하느님의 것은 성령의 힘입니다. 베드로가 사도 행전에서 태생적으로 앉은 뱅이에게 말을 건넵니다. 나를 보시오 나는 가진것은 없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한다 일어나시요. 하니 그가 벌떡 일어섭니다. 이것이 이성으로 설명이 될까요? 이것이 인간의 이성으로 정당화라 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힘에 의해서 사람이 일어섰다는 것입니다. 그 근원은 하느님의 사랑이 성령의 통로로 베드로의 영으로 들어가시어서 불구자 앉은 뱅이를 일으켜 세우시는 것과 같습니다. 그 힘은 베드로인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그 통로는 성령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이 베드로에게 전달 된것입니다. 불완전한 인간은 한 낫 흙과 같은 것입니다. 숨을 거두어 가시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 유한한 존재가 그 기적을 행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힘입니다. 성령은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이 안됩니다. 하느님의 것인데 어찌 인간의 이성으로 알 수 있나요? 그래서 온전히 나를 비우고 온전히 말씀하나에 의탁하는 사람에게 성령은 임하십니다. 배우고 똑똑한 사람들 보다는 부족하지만 온전히 하느님에 온전히 비움의 삶을 사는 이들에게 하느님은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신다는 것입니다. 온전히 자기 자신을 포기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온 마음과 얼굴을 드러내시는 주님입니다. 신앙도 성취 관점에서 바라보고 잘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큰 위기가 오면 바로 쓰러지고 절망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하느님의 현존 안에 머물 수 있어야 겠습니다. 하느님의 현존안에 머물기 위해서는 나를 버리고 나를 포기하고 나를 다른 사람들중에서도 가장 낮은 사람으로 볼 수 있어야 하고 나라는 존재를 하찮은 존재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논리 체계를 온전히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성령이 임하셔서 나를 온전히 일으켜 세우실 수 있도록 내어 맞길 수 있어야 온전한 하느님을 알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너의들이 보는 것을 보려 하지만 보지 못한다.. 그러나 너의는 보고 있다. 그것의 가장 큰 벽은 나라는 이성체계를 버릴 수 있느냐 없느냐? 입니다. 나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냐 입니다. 나를 어찌 보고 어떤 방향으로 주님을 향해가는지 그것을 묵묵히 묵상하고 걸어가야겠습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