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영근 신부님_“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루카 1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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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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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7-27 | 조회수54 | 추천수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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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7/27) : 연중 제17주일 * 제1독서 : 창세 18, 20-32 * 제2독서 : 콜로 2, 12-14 * 복음 : 루카 11, 1-13
1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3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4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5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6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7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12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 <오늘의 강론> 연중 제17주일 입니다. 오늘 <말씀전례>는 ‘기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구하기 위해, 하느님과 벌이는 공방전을 감동적이고 신뢰에 찬 극적 장면을 통해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 탄원과 중재기도를 통해 선한 사람의 성성(聖性, santita)이 얼마나 위대한 지를 말해줍니다. 여기서는 의인 ‘열 사람’이 없어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게 되지만, 예언자 예레미야와 에제키엘은 예루살렘을 구하기 위해서는 죄 없는 ‘한 사람’으로 족하리라고 말한다(예레 5,1;에제 22,33). 그리고 이사야는 ‘야훼의 종의 넷째 노래’에서, 죄를 짊어지고 가는 죄 없는 사람을 노래합니다. 그 한 사람의 역할은 기다리고 있던 유일한 중재자 예수님의 몫이었습니다. 그리고 <제2독서>에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인하여 얻어지는 은혜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복음>에서, 기도의 원형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주십니다. 흔히 ‘주님의 기도’로 불리는 ‘예수님께서 가르쳐 준 기도’를 전해줍니다. 기도를 가르쳐주시기 전에, 먼저 이 기도의 배경을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루카 11,1)
사실, 예수님 당시에는 로마의 억압과 과도한 세금 징수와 종교인들의 부패 속에서 종교적이고 민족적인 메시아 대망사상을 담은 여러 부흥운동 그룹들이 나타났고, 그들은 자신들의 열망을 담은 기도문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도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제자 가운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청합니다.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주십시오.”(루카 11,1)
그렇습니다.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주님의 기도’는 탄생되었습니다. 곧 ‘새 공동체의 원리와 삶과 질서를 담은 새 기도문’이 요청되었던 것입니다. 이는 새로운 나라, 새로운 공동체를 향한 강령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기도가 <마태오복음>에서는 새로운 하느님 나라의 윤리와 삶을 이야기 하고 있는 “산상설교”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기도는 “저희에게 가르쳐주십시오.”라는 청에 대해, 예수님께서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라고 ‘모범으로 제시된 기도’임과 동시에, 이 기도는 개인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들의 ‘공동체에 주어진 기도’임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이 기도는 시작부터가 충격입니다. 하느님을 “압바”(αββα)라는 친밀함으로 부르시며, 당신의 영광을 우리에게 건네주십니다. 곧 인간인 저희를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고귀한 신원과 지위로 들어 올리십니다. 저희가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하시어, 당신과 함께 아들인 성자의 반열에 들게 하십니다. 이로써,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우리에게 건네주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하느님 되게 하시고, 우리를 당신과 하나 되게 하십니다. 우리는 이 특권을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님을 통하여 받았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이 기도의 열쇠 말은 “아빠”입니다. 결국, 이 기도는 “아빠, 아버지"이신 그분의 현존 앞에서 벌어지는 기도입니다. 곧 그분을 대면하는 면전에서 벌어지는 기도입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충격은 그냥 “압바”인 것이 아니라, “우리 압바”인 것입니다. 곧 복수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한 형제’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우리’에는 시제가 없으니, 과거의 선조들과 예언자들을 포함하여 미래의 하느님의 자녀들까지를 포함하여 형제 가족을 만듭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로서의 삶의 원리가 기도로 주어집니다. 곧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는 이들에게 걸 맞는 ‘자녀로서의 삶이 소명’으로 주어집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다름 아닌 ‘자녀의 길’을 걸어갑니다. 오로지 아빠 아버지께 속해 있는 아들, 딸로서, 언제 어디서나 아버지의 뜻을 따라 길을 걸어야 할 일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는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넉넉히 주시는 분이심을 가르쳐주십니다. 그것을 두 가지 비유, 곧 ‘한밤중에 찾아온 벗에 대한 비유’와 ‘세상의 아버지에 대한 비유’를 통해서 가르쳐주십니다. <첫 번째> 비유를 통해서는 잠을 자던 사람도 벗의 끈질긴 간청에는 마지못해 들어주거늘, 하물며 주무시지도 않으며 오히려 잠든 우리를 깨워 간청하게 하시는 아버지께서야 더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겠는가를 들려주십니다. <두 번째> 비유를 통해서는 세상의 아버지들도 제 자식들에게는 세상의 좋은 것을 주거늘, 하물며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께서야 어련히 하늘의 좋은 것들을 주시지 않겠는가를 들려주십니다. 그러니, 그토록 넉넉히 들어주시는 아버지께 청하라 하십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루카 11,9)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청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청한 것보다도 좋은 것, “성령”(루카 11,13)을 주실 것입니다. 당신의 영을 주실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루카 11,2)
주님! 당신께서는 저희를 성자의 반열로 들어 올리시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고귀한 지위에 들어 올리셨습니다. 이제는 제 자신이 아니라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소서. 제가 바라는 나라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나라를 이루소서.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생명의 빵이신 아드님을 양식으로 삼아 당신 안에서 영원히 살고, 당신과 한 몸이 되게 하소서. 다름 아닌 용서를 통하여 그러하게 하소서.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자비로운 사람 되게 하시어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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