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 | |||
---|---|---|---|---|
이전글 | 김건태 신부님_마르타와 마리아와 라자로 | |||
다음글 | ╋ 057. 내 마음은 예수님이 거하시는 감실이다. [하느님 자비심, 파우스티나 성녀] |1| | |||
작성자박영희
![]() ![]() |
작성일2025-07-29 | 조회수62 | 추천수2 |
반대(0)
![]() |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 요한 11,19-27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의 장례식과 아무 것도 믿지 않는 비신자들의 장례식은 분위기가 다릅니다. 비신자들의 장례식은 마태오 복음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죽은 이들이 지내는 죽은 이들의 예식’입니다.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믿지 않는 이들은 한 번 죽으면 그대로 끝나버리는 짧은 인생을 사는 동안 매일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니 ‘죽은 이들’일 수 밖에 없고, 그런 이들이 지내는 장례식은 죽음이라는 한계 앞에서 인생의 허망함을 절감하며 떠나간 이에게 더 잘 해주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자리가 될 뿐이니 ‘죽은 예식’인 겁니다. 그러나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 신앙인들의 장례식은 ‘살아있는 이들이 지내는 살아있는 예식’입니다. 저는 얼마 전, 함께 지구 초등부 일을 했던 한 자매의 모친 장례식장을 방문하여 그 점을 분명하게 체험했지요. 그 자매와 형제들은 어머니께서 너무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음에도 그저 슬퍼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어머니께서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에는 병마와 싸우시느라 고생하셨지만, 이제는 하느님 품 안에서 참된 안식과 평화를 누리고 계시다는 분명한 믿음을 말로 그리고 손님들을 기쁜 얼굴로 맞이하는 씩씩한 행동으로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죽음이 끝이 아니며 하느님 나라로 건너가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고 믿었으니 ‘살아있는 이들’이며, 그런 믿음으로 어머니를 잘 떠나보내고 나중에 하느님 나라에서 다시 만나리라 희망하니 ‘살아있는 예식’이 되는 겁니다.
오늘 우리는 성 라자로와 성녀 마르타, 마리아 남매의 삶과 신앙을 기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부활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참된 믿음으로 이끄시지요. 우리가 ‘나는 주님을 안다’라는 인지의 차원에서, ‘나는 주님을 믿는다’라는 신앙의 차원으로 넘어가도록 이끄시는 겁니다. 예수님은 오빠 라자로의 죽음으로 슬픔에 빠져있던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를 찾아가십니다. 그러자 마르타가 예수님을 마중나가 그분께 이렇게 말하지요.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말에는 자기 오빠가 중병에 걸려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했음에도 즉시 달려와주지 않으신 예수님께 대한 원망과 섭섭함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예수님만 계셨다면 그분의 능력으로 자기 오빠를 반드시 치유해주셨으리라는 믿음 또한 담겨 있지요. 그리고 마르타는 오빠가 세상을 떠난 지금도 예수님의 신원과 권능에 대한 믿음을 지니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권능에 대해 ‘알고 있다’고 고백할 뿐, 그 권능을 ‘믿는다’고 고백하지는 않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마음만 먹으면 하느님께 청하여 오빠를 다시 살려주실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계심을 ‘알지만’, 그분께서 반드시 그렇게 해주시리라고 ‘믿지는’ 못했던 겁니다. 그런 태도는 부활신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지요. 그녀는 세상 종말의 날에 죽었던 모든 이들이 부활하여 주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일이 자신에게 반드시 일어나리라고 ‘믿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머리로만 이해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믿음은 내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마르타를 참된 믿음으로 이끄십니다. 당신을 믿고 따르는 모든 이가 죽더라도 멸망하지 않고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따르라고 하십니다. 신앙생활을 그저 머리로만 하려고 들지 말고 실제 생활에서도 주님과 상관있는 모습으로 살라고, 그래서 주님께 대한 믿음이 내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쳐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만들라고 하십니다. 그래야 나의 믿음이 살아있는 믿음이 되고 내가 하느님 앞에서 참으로 살아있는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 신앙은 어느 수준에 머무르고 있습니까? 그저 주님을 ‘알고’만 있습니까? 아니면 그분을 ‘믿고’ 따르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습니까?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