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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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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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8-07 | 조회수186 | 추천수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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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교구 사제 모임이 있어 코네티컷에 다녀왔습니다. 그곳 신부님 사제관에서 참 인상적인 장면을 보았습니다. 신부님께서 화초를 정성껏 키우고 계셨는데, 알고 보니 교우들이 키우기 어렵다고 맡긴 화초들이라고 합니다. 신부님은 그 화초들을 하나하나 살피며, 어떤 건 햇볕이 더 필요하고 어떤 건 그늘을 좋아하는지, 물은 얼마나 줘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제관 입구에는 하얗고 노란 야생화가 피어 있었습니다. 그 꽃을 보니 저도 모르게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공동체도 이렇게 돌보는 거구나.” 화초를 돌보듯 교우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살피며 함께하려는 신부님의 마음이 본당을 따뜻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같은 본당이라도 사목자의 태도에 따라 분위기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음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신부님의 그 모습에서 저는 ‘착한 목자’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오늘 독서 말씀에서도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온갖 시험과 기적, 전쟁과 강한 손으로 이스라엘을 다른 민족 가운데서 데려오셨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이 없다면 하실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그분의 규정과 계명을 지켜라.”라고 하십니다. 그래야 너희와 자손이 잘살고, 오래도록 그 땅에 머무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계명은 단순합니다. “하느님께서 거룩하시니 너희도 거룩하게 되어라.” 그리고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여라.” 이 말씀 안에 우리의 삶의 방향이 들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이 말씀은 쉽지 않습니다. 누구도 십자가를 지고 싶어 하진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 길에서 세 번이나 넘어지셨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고, 그 길 끝에 부활의 영광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목숨’은 단순한 생명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 다시 말해 차원이 다른 삶을 말씀하십니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하늘을 날듯,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런 생명을 약속하십니다. 저는 예전 본당 마당의 대추나무가 생각났습니다. 그 나무는 작은 열매, 부실한 열매는 스스로 떨어뜨렸습니다. 그래야만 알찬 열매를 맺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 앞에 좋은 열매를 드리기 위해서, 우리는 불필요한 욕심, 자존심, 미움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생각해 봅니다. 나무가 뿌리가 없으면 가뭄에도, 바람에도 쓰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집이 기둥 없이 서 있을 수 없듯, 공동체에도 뿌리와 기둥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런 분들이 바로 봉사자이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저는 늘 생각합니다. 제가 드러나는 ‘꽃’이라면, 봉사자분들은 땅속에서 조용히 양분을 찾아주는 ‘뿌리’와 같습니다. 그 뿌리가 튼튼해야 꽃도 건강하게 피울 수 있습니다. 더운 여름 날씨에 시원한 소나기처럼, 봉사자 여러분이 계시기에 공동체가 숨 쉴 수 있습니다. 오늘 성 도미니코 사제를 기리는 날입니다. 도미니코 성인은 참된 가르침과 사랑으로 교회를 이끌었던 분입니다. 그분의 삶처럼, 우리도 진리 안에서 사랑을 실천하고, 서로를 돌보며, 함께 십자가를 지는 공동체가 되면 좋겠습니다. 화초를 사랑으로 키우던 신부님처럼, 대추나무처럼 불필요한 것을 버릴 줄 아는 지혜로, 나무의 뿌리처럼 공동체를 지탱하는 믿음으로 우리 모두,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되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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