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자비의 하느님과 냉정한 우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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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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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8-19 | 조회수162 | 추천수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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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의 하느님과 냉정한 우리 주님은 더욱 커지셔야하고 나는 작아져야 합니다. (요한복음 3:30) 낮추어 봄에 있다.(준주성범) 따뜻한 품으로 돌아오라며 우리의 대답은 왜 냉정한가 ! (2000.4.30 성인에 오름)에게 말씀하신 것 영혼들의 전 생애를 자애로운 어머니가 그들의 임종 시에 나는 심판자가 아닌 (일기 1075) 즉 의탁에 의해서만 전달될 수 있다. 은총을 얻을 것이다. 끝없이 의탁하는 영혼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된다. 그들에게 부어주기 때문이다. 나의 바람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음을 좁힐 때 나는 슬프다. 이것을 기록하여라. 영혼이 그 죄의 심각함을 보고 깨달을 때, 그의 끝없는 비참함이 심연에로 빠져드는 것이 그의 눈앞에 펼쳐질 때 절망하지 말고 그를 사랑하는 엄마의품에 뛰어드는 아이와 같이 의탁과 함께 내 자비의 품으로 달아들게 하여라. 마음에 대한 최 우선권을 가지며 내 자비의 첫번째 통로를 갖는다. 부끄러움을 당한 영혼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나는 특별히 기뻐한다. (일기 1541) (일기 1273) 자비의 행위를 요구한다. 자비를 보여야 한다. 자신에게 면제시키려 해서는 안된다. 세가지 방법을 준다. 둘째는 말로, 셋째는 기도로서이다. 나에 대한 사랑의 확실한 증거이다. 흠숭을 드리는 것이다. (일기 742) 갖지 못해서 종종 염려하는 많은 영혼들을 위해 이것을 기록하여라. 요구하지 않는 정신적 자비가 훨씬 더 칭찬할 만하며 모든 영혼을 사로잡는다. 실천하지 않으면 심판의 날에 나의 자비를 입지 못할 것이다. 보화를 모으는 방법을 알기만 하였다면 누그려뜨렸기 때문이다." (일기 1317) 위안을 찾아야 하는지를 말해 주어라. 일어나며 또 끊임없이 반복된다. 특별한 의식을 거행할 필요가 없다. 믿음으로 와서 자신의 비참함을 그에게 드러내는 것으로 충분하며 그러면 하느님 자비의 기적은 완전하게 증명되어 질 것이다. 보아서는 썩어가는 시체와 같아서 더 이상 회복 희망이 없고 모든 것을 이미 잃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영혼도 하느님과 함께라면 그렇지 않다. 영혼들은 얼마나 불행한가! (일기 1448)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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