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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리델 신부 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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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용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3-08-21 조회수707 추천수0 반대(0) 신고

리델 신부의 피신

 

 신부를 쫓던 경포들은 주민들에게 염탐하여 진밭 공소에 들어간 리델 신부를 잡기 위해 주막거리에서 술을 먹으며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술좌석에서 포졸 대장이 하는 말을 우연히 옆방에서 엿들은 경상도 박춘삼이란 교우가 리델 신부를 찾아가서 급히 피신시키는 내용이다. (윤의병신부지음「은화」하권 173-180)

 

놈들이 양인에게 상제복을 입혀 이 동네로 데리고 가서 숨겨 놓고 자기들은 벌써 제 동네로 돌아간 것이 틀림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포졸대장 강찬백은 얼굴에 만족한 빛을 감추지 못한다. 그는 부하를 데리고 주막에 들어 저녁을 시켜먹고 밤이 깊어지기를 기다리면서 술을 청하였다. 일은 거의 성공된 데다가, 술까지 몇 순배 돈지라 그들은 기분이 명랑해지고 마음이 상쾌하여 아무 거리낌없이 말문을 열었다.

“양인이 그럼‘진밭’에 들어온 것은 틀림없지요?”

포졸 하나가 두목을 향하여 묻는다.

“틀림없지.”

하고 강찬백이 말을 받는다.

“나무꾼이 그것을 보았다고 했고 그 다음에 그리로 지나온 사람은 그 일행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이제 날이 저물어 다른 곳으로 가지는 못했을 것이니 거기로 들어갈 수밖에 없고, 또 객주 집이 아닌 천주학쟁이 집에 들어가 거기서 며칠 묵을 걸세.”

하고 껄껄 웃는다.

“그럼, 밤이 깊은 다음에만 착수해야 되나요?”

또 다른 포졸이 묻는다.

“아무렴! 아직 이르지. 좀더 기다려야지.”

하고 강찬백은 그 이유를 설명한다.

“천주학쟁이들은 낮에나 초저녁에는 그 부근에서 망을 보고 있다가, 우리를 본다면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노세, 노세, 젊어 노세’라는 소리도하고, 동구 밖에 아이들이‘워어리, 워어리’개를 부르거나,‘오래, 오래’하고 돼지를 부르기도 하는데, 저희들끼리는 서로 알아듣고 감출 것은 감추고, 숨을 놈은 숨고 하거든. 그러니 좀처럼 잡을 수가 없지. 그뿐 아니라 양인이 있는 집에는 대개 밤중에 놈들이 모여서 무슨 짓을 하거든. 그때 습격하면 독 안에 든 쥐지, 별수 있나…."

강찬백은 유쾌한 듯 또 한바탕 껄껄 웃는다. 그런데 바로 그 옆방에 머리를 벽에다 대고 전신에 신경을 귀로 집중하여 이 말을 엿듣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는 박춘삼이란 청년이 있었다.

 

‘진밭’동네에도 밤은 깊어진다.

신부를 모신 이 안드레아의 집은 은종일 어제나 다름없이 조용했다. 낮에는 교우들도 바쁘긴 하지만, 그보다 조금이라도 수상한 티를 내지 말자는 의도에서였다. 만일 밤에 낯선 인기척이 나면 곧 벽장으로 숨을 준비를 하여 두고 이 신부는 은종일 신공을 드리면서 하루를 보냈다. 날이 어두운 다음에 동네 교우들이 하나씩 모여들었다. 군란 때 이처럼 신부가 자리를 옮긴 다음 맨 먼저 알고자 하는 것은 그 부근의 분위기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혹시 조금이라도 수상한 눈치를 채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더구나 양인을 잡으러 나선 경포들과 한 나룻배를 타고 금강을 건넌 이 신부의 가슴인지라 아주 안심할 수 없어 이곳의 최근 정세가 어떠냐고 물었던 것이다. 나무나 숯을 팔러 나갔던 교우들이 듣고 온 정보를 모두 종합해보면 이 부근에도 시국이 완화되는 기색은 없고 요사이 서울에서 내려온 경포들이 자주 금강 나루를 건너가고 건너오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신부는 오늘 금강 나루를 건넜을 국실 교우의 안부를 염려하면서 그렇게 물었던 것이다.

“뭐,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이 안드레아가 말을 받는다.

“국실 교우들이 아침 일찍 떠났고, 또 어제 신부님을 모시고 경포들하고 나룻배를 같이 타고 온 교우들이 오늘은 자기들끼리 떠났으니 무슨 탈이 있을 리가 있겠습니까?”

“요새 시절이 좀 어수선하지만 얼마 지나면 또 조용해질 겁니다. 그러니 신부님은 얼마동안 여기 꼭 숨어 계시면 안심하셔도 좋을 겁니다. 경포들이 개 쏘다니듯 한다 할지라도 놈들이 한군데서 언제까지나 붙어 있는 건 아닙니다. 여기서 양인을 못 잡으면 예산읍이나, 논산읍으로 빠져나갈 겁니다. 그러면 또 조용해지겠지요.”

“그럼 밤도 깊어가니 성사예비나 하고 있다가 미사참례를 하고서 흩어져야지.”

하고 리델 이 신부가 말할 때,

“주인장 계십니까?”

하는 소리가 사립짝 밖에서 들려온다. 방안은 갑자기 조용해지며 서로 시선만 마주친다.

“주인장 계십니까?”

하는 소리가 연거푸 들린다.

“에헴! 거 누구요?”

대답하면서 이 안드레아가 태연한 체 밖으로 나간다. 모든 이의 귀는 밖으로 쏠린다. 신부는 힐끗 벽장문을 쳐다본다. 밖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지며 문이 벌컥 열린다. 웬 씩씩하게 생긴 청년 하나가 방안을 휘둘러보더니 성큼 들어선다. 일동의 가슴이 섬뜩했다. 청년은 이 신부를 향하여

“죄송합니다. 저도 교우입니다.”

아래 주막거리에서 저녁 요기를 하고 있다가, 뜻밖에 옆방에서 경포들이 떠드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이‘진밭’이란 동네를 급히 찾아온 것이다.

"이 동네에는 교우도 있고 신부도 있는 것이 틀림없으나 어떤 집인지 알 수가 없어 이집 저집 기웃거리다가 마침 희미한 불빛이 어른거리는 이 방에는 여러 사람이 있는 듯하여 더 망설일 수가 없어 주인장을 불러 자기도 교우인 것을 말하고, 포졸들이 지금 이 아래 주막거리에 있습니다. 여기 신부님이 계신 줄 알고 곧 습격할 것이니 급히 피난하여 주십시오!”

박춘삼은 씨근거리며 황급히 말을 토한다. 좌 중은 얼굴빛을 잃는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이 소식의 진의를 알기 어렵다. 그러나 그의 난처해하는 기색을 살피고 신부의 얼굴을 쳐다보며 어떻게 해야 좋으냐고 묻는 눈치다.

“자초지종을 좀더 똑똑히 말해 줄 수는 없소?”

“제발 나를 믿어 주시오! 나도 교우이고 본명은 바오로입니다. 급박하니 더 오래 말할 수 없소이다. 내가 금방 이 귀로 놈들이 의논하는 이야기를 듣고 뛰어왔소. 내가 만일‘유다스’라면 어째 포졸들을 데리고 오지 않았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밖에서 동정을 살피다 미사 지낼 때에 포졸들을 인도하지 않겠습니까? 제발 신부님! 신부님 혼자라도 얼른 저를 따라 서십시오!”

“이 사람 말이 옳다!"

"그럼 어서들 뒷산 꼭대기로!”

이 안드레아가 총지휘자로 나섰다. 윗방에 있던 여 교우들은 벌벌 떨면서 궁둥방아만 찧고 있다. 이 안드레아가 윗방을 올려다보며

“무엇을 지체하시오? 부인들은 여기서 곧장 산으로 치달으시오. 뒷일은 남자들이 챙길 테니.”

하고 독촉한다. 두 눈에서 불똥이 튄다. 그제야 뒷문을 열고 여 교우들이 허둥지둥 몰려 나간다. 울타리를 뚫고 기어오른 어떤 부인은 신발도 신지 못하고 버선발로 허둥댄다. 어떤 부인은 집으로 달려가 어린애를 들쳐업고 산을 오르다보니 동에 업힌 것은 베개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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