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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애리의 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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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장성덕 쪽지 캡슐 작성일2007-11-13 조회수1,202 추천수0 반대(0) 신고

 

지난 여름 딸 아이의 대 수술로 우리 가족은 커다란 충격과 시련을 겪었지만
주님의 은혜로운 손길과 헤아림으로 기적 같은 새 생명을 얻게 되었다.

주님께서 살려 주신 애리는 이제 주님의 딸 입니다.

그리고 약속을 하였다.
늘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기도하기로..
내 딸을 살린 미국 땅에 감사하며 그 사회에 봉사하기로..
그리고 애리를 하느님의 딸로 인도하기로..

7월 20일 정신 없이 비행기에 올라 공항에 도착하자 마자 휴대폰을 통해 전해 온 아이 엄마의 말이...

간 이식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아무리 아비가 소홀했고 무지했다지만 이런 날벼락이 있을 수 있을까?
어쩌다 그 지경이 됐고 어떻게 그 큰 수술을 감당할 수 있을까?

2주 전, 7월 4일부터 아프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동안 동네 병원,  대학 병원을 다녀봤지만 원인을 찾지 못한 채
녀석이 머리 아프고 배 아프고 자꾸 토하니까 Tylenol 만 계속 집어 삼킨 모양이다.
나중에 병원에서 원인 추정을 한 것도 간염 증세에 Tylenol 과다 복용이
간 기능을 상실케 한 주범이었다 하고..

Cedars-Sinai Medical Center
Beverly hills 에 있는 유태계 병원으로 나중에 안 일 이지만 미국에서 장기 이식 시술이 가장 뛰어난 병원 중            하나라고 했다.
매일 한 두 번씩 헬리콥터가 뜨고 내리는데 아마도 장기 운반용 이라 짐작이 되었다.

이미 일반 병동에서 중환자실로 옮겨져 있었고, 아빠를 알아보긴 하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전혀 기억을 못하고 있었다.
간에서 맑은 피를 제대로 생성하여 뇌를 비롯한 신체 각 부위로 전달을 해 주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니 생각도 제대로 못하고 말도 제대로 못했겠지.

어디서 들었는지 수술을 늦게 하면 병신이 되는데, 자기는 병신으로 사느니 죽는 게 낫다고 했다.
그럴 리야 있겠느냐고 얘기는 하였지만.

담당 의사와 면담을 요청하니 Dr. Nissen과 전화 연결을 해 주었다.
현재 간 기능이 10% 정도 남아있는데, 가능성이 높지는 않으나 기대를 해 보자.
운이 따르면 간 조직이 다시 살아나는 경우가 있으니 좀 더 기다려 보자고 했다.
나빠지면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그때 가서 간 이식 수술을 하면 된다고 한다.
간이 그렇게 쉽게 구해 지냐고 물었더니 아주 어렵지는 않다고 한다.
어느 정도까지 기다릴 수 있느냐 물으니 48~72 시간 정도 여유가 있다 했다.
또 이식용 간이 있기는 했으나 size가 맞지 않아 결정을 못 했다고도 했다.
혈액형, negative 반응, size 모두가 맞아 떨어져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아빠가 왔다고 반가운 기색도 하고 밥도 좀 먹는 것 같아,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하면서 집으로 향하였다.
이제 내가 네 곁을 지켜 주마. 그 동안 엄마와 식구들의 마음 앓이가 너무 심했구나.
마지막 잎새와 같이 너는 다시 일어날 것이다.
하늘 빛이 전과 다름없었고, 내 딸이 내 곁에서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일어 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면서...

21일 새벽 2시
병실로 돌아와 보니 정신이 좀 더 들어 있었고 아빠보고 어디 갔다 왔냐고 묻기까지 했다.
간호사의 도움으로 목욕도 하고 대변을 보았다 하며 기분이 한결 나아져 있었다.
잠도 자는 것 같았고, 아침 식사로 요구르트, soup, 젤리 등 제법 많은 양을 먹었으나 나중에 다 토 했다.

아침 회진 시간에 Churen 이라는 중국계 여의사가 와서 얘기를 했다.
간이 일부 기능을 하지만 서두르는 것이 좋다. 자기 동생 같았으면 당장 수술을 하겠다 고 했다.
나중에 회진 온 Dr. Nawabi 에게 간 이식을 서둘러야 하지 않느냐 했더니
여러 network을 통해 이식용 간을 찾아보고 있다고 했다.

아침까지 컨디션이 좋던 애가 먹은 것을 토하기 시작하더니 복수가 오르기 시작하고,
12시경부터는 주는 약도 안 먹겠다고 투정을 부리고, 별 말도 없이 잠만 자다 깨다 한다.
눈을 마주쳐도 이미 풀린 눈으로 아빠를 알아 보질 못한다.
코에 끼어 있는 산소 튜브를 잡아 빼기 시작한다.
뇌 단층 test를 하였다. 뇌출혈이 되면 끝장이다.
나도 절망과 두려움으로 갈피를 못 잡겠다.

15시가 되어 이제는 눈의 초점을 잃고 얘기를 시켜도 대답을 안 하고 헛소리를 하기 시작한다.
얼굴과 눈이 완전히 노래졌다.
내 딸이 내 앞에서 혼절 하고 있다.

급기야 의사가 달려와 응급 조치를 했다.
이제 고통과 괴로움으로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의사가 진정제 주사를 놓고 30분 후에 보기로 하였다.
30분 후 깨어나 다시 요동을 친다.
아파, 하지마! 아파, 하지마! 를 소리치면서..
또 다시 진정제를 놓고 30분을 기다려 본다.
다시 깨어나 또 한 차례 고통의 몸부림을 친다.
이번에는 냄새 나, 하지마! 냄새나 하지마! 를 반복하면서..
붙잡고 외쳐 봤다. 아빠 사랑하지?
아냐, 사랑 안 해! 라고 한다. 어떤 상태에서 인지?

이제 애리는 완전히 혼수 상태에 빠졌고 intubation 을 하였다.
수없이 피를 뽑고 링겔대가 휠 정도로 많은 주사가 꽂혀졌다.
밤 10시 다시 뇌 단층 검사를 하였다. 거의 4시간 마다 하는 것 같았다.
애리의 수치가 모두 내려가고 있었다.
혈압, 맥박, 호흡 모두가 떨어져 가고 있었고, 자꾸 눈물이 나왔다.

애리가 너무 불쌍하고 고통스럽고 외로워 보였다. 금방이라도 저 세상으로 떠날 것 같았다.
어린 나이에 홀로 유학 와서 변변히 친구도 못 사귀고 혹시라도 이렇게 너 혼자 외로이 갈수는 없다.
네 곁에는 사랑하는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이 있다.

하느님께 빌었다. 내 생애 가장 절실한 기도였다.
대기실에서 만난 Adam 이라는 유태인과 그의 누이가 애리를 위해 기도해 주었다.
가족이 기도를 하고, 투병 중인 이모가 기도를 해 주셨고, 승수, 승건, 제니퍼 모두 와서 기도를 해 주었다.

잠든 애리에게 ‘’백만 번의 프러포즈’’ 책을 읽어 주었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주인공의 어머니가 3일 낮 밤을 기도하여 아들을 소생시켰다는 내용이
나에게 새로운 용기를 가져다 준다.
애리야, 네 곁에 아빠가 있다. 영원히 네 곁에 있을 것이다.
밤새 애리 곁에서 기도를 드렸다.

22일 아침
의식 불명의 애리를 밤새도록 보살펴준 필리핀 간호사가 귀띔을 해 주었다.
아마도 이식대상 간을 찾은 것 같다는 얘기였다.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

애리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드렸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애리에게 생명을 주십시오.
옆에서 빛이 잠시 번쩍였다. 두 번째 빛이 보였다.
그날 아침 세 번의 빛을 보았다.

10시에 회진 온 Dr. Nissen 이 얘기를 해 주었다.
이식 대상 간이 수배가 되었고 오후 6시쯤 간이 도착하면 검사를 거쳐 9시경 수술을 할 예정이라고 설명을 해 주었다.
애리는 계속 혼수 상태였지만 이제 희망이 생겼다.

미국 전역에서 2만 4천 명 이상의 환자가 장기 이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행운인지 애리를 이식 대상 최우선 순위에 올려 놓아 수술을 해 주는 케이스였다.
그만큼 위급한 상황이었고 그나마 젊고 건강하니 우선적으로 조치를 해 준 것 같았다.
간 기증자는 딸 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건강한 아이인데 안타깝게도 사고로 인해 애리에게 새 생명을 주게 되었다.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오후에 신부님과 Anselmo 형제, 자매님, Maria 자매님이 오셔서 기도를 해 주셨다.
그 자리에서 얘기를 했다.
나 자신을 위해 기도를 드린 적은 없는데 자식이 어려운 처지에 있으니
저절로 기도를 하게 되더라 라고.

오후 7시 40분쯤 연락이 왔다. 15분 후 수술을 위해 데리러 오겠다고.
우리 가족, 친척 모두 차례로 잠든 애리에게 기도와 인사를 하였다.
마지막으로 수치 검사를 하고 체온을 올리고 수술 준비를 하였다.
9시 50분 수술실로 데려 가면서 예쁘게 생긴 수석 간호사가 중간 중간 경과를 알려 주겠다 했다.
이제는 다 예뻐 보인다.

11시 25분 간호사가 대기실로 전화를 하여 수술 시작 한 시간이 경과되었고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알려 준다.
서울에서는 밤새 고모들이 기도와 격려의 전화와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드디어 7월 23일 01시 53분 전화 벨이 울렸다.
'The River is in'
간 이식이 완료되었다는 알림이었다.
다시 03시 25분 수술이 완료되었다는 전갈이 왔다.
애리 엄마와 high five를 하였다.
신기하게도 23일 날짜는 내게 많은 기억이 있는 날이다.
군 입대한 날, 두 번의 해외 임지에 부임했던 날, 두째 태어난 날, 골프 Hall in one 한 날, 미국으로 이주 한 날 등등.

5시경 수술실에서 먼저 나온 Dr. Nawabi 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조금 후 Dr. Nissen 이 나와 얘기를 나누었다.
5시간의 긴 수술이었고 피곤해 보였지만 친절히 설명을 해 주었다.
수술도 잘 되었고 간도 적당한 timing에 구할 수 있었고 애리가 건강하니
회복이 잘 되기를 기대한다고.

6시 25분 수술실에서 나와 중환자 실로 옮겨졌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가까운 이모네 집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샤워도 하고 밥도 먹을 겸.
아침 도로는 촉촉히 젖어 있었고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졌다.
라디오에서 L.A.에 7월에 비가 내린 것이 21년 만 이라고 뉴스를 전한다.
21년 전 애리가 태어났던 해 비가 내리고 그 후 처음으로 오늘 비가 내렸다니 묘한 징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애리는 그날 내내 깨어나질 못하고 계속 혼수 상태로 있었다.
간호사나 의사가 와서 계속 꼬집고 의식 회복을 check 하였지만 초조하리 만치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하루를 넘겼다.
나도 마음이 지쳐갔고 신경도 예민해 졌다.
그래도 상황이 훨씬 나 졌으니 조카들과 함께 나가 저녁 식사도 하고 돌아왔다.
나갔다 오니 간호사가 애리의 발가락이 조금 움직였다고 애기를 했다.

24일 아침
6시 애리가 처음으로 눈을 떴다. 그리고 7시 55분쯤 의식을 회복했다.
만 65시간 만에 의식을 차린 것이다.
목에 튜브를 낀 상태지만 정신이 돌아와 사람들을 알아본다.
뭔가 얘기를 하려고 하지만 튜브 때문에 포기를 한다.

낮 12시 반이 되어 호흡이 정상으로 찾아와 튜브를 제거하고 드디어 입을 열었다.
컨디션이 나아진 걸 느꼈는지 제법 멀쩡하게 얘기를 한다.
갑자기 착해진 듯 아빠가 시킨 게 있는데 아직 못했다고 미안해 한다.
그리고 아빠는 언제 왔냐고 묻고, 수술은 언제 하냐고 묻는다.
수술이 끝났다 해도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당연히 계속 배가 아프다고 했고, 물과 평소에도 안 먹던 콜라를 자꾸 달라 했지만
그날은 아무것도 먹질 못한 채 지나갔다.

25일
아침에 컨디션이 좋게 깨어났고 식사도 나왔다.
요구르트를 3숟갈 정도 먹고 머리와 배의 통증도 많이 가신 듯 했지만
오후 들어 다 토하고 다시 머리와 배가 아프다고 했다.
모르핀 주사를 6번은 맞은 것 같다. 소변은 잘 나오고.

26일
드디어 중환자 실에서 일반 병동으로 옮겨졌다.
Shaperstein 병동에서 일반 병동인 North tower로 통하는 bridge 창을 통해 찬란한 아침 햇살이 쏟아졌다.
비록 애리는 평생 자외선에 노출되지 말아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햇빛을 즐길 수는 없겠지만
애리의 재생의 길에 하느님께서 밝은 손길로 인도해 주시는 것 같았다.
그럼 이제 다시 시작이고 말고.

서울에서 후배가 와서 오랜만에 휴식도 갖고 후배와 회포를 나누는 여유도 가졌다.

27일
퇴원을 해도 좋다는 통보를 받았다. 애리 엄마가 퇴원 후 지침을 받았는데,
무려 10가지의 약을 복용해야 하고 하루 4번씩 혈당 check를 하여 Insulin 주사를 맞아야 한단다.
평생 먹어야 하는 약도 있고 하지 말라는 것도 많았다.
당분간 일주일에 두 번씩 아침 7시 병원에서 직접 피검사를 해야 했다.
가장 경계를 해야 할 것이 거부 반응(rejection)과 감염(infection)으로
증세가 나타나면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야 하니 이제는 멀리 여행도 못 갈 형편이다.

28일
애리가 빨리 집에 가고 싶다고 하여 아침에 서둘러 퇴원을 하였다.
아마 너무나도 병원이 지겨웠을 것이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수술 자국을 동생에게 보여준다.
역 Y 자로 찢어진 배에 큰 스테플러가 그대로 박혀 있는 프랑켄슈타인 같은 모습에 질겁을 했다.
카펫 청소를 하고, 키우던 고양이는 친구에게 입양을 시키고
애리의 방은 병실 분위기로 바뀌었다.

이로써 일주일에 걸친 한 여름의 대 장정이 끝이 나는가 보다 했다.

8월 7일
산 호세에 출장 중 애 엄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상담 중이어서 나중에 전화를 한다 했지만 예감이 안 좋았다.
안 그래도 황달 기가 있었는데, 열까지 나고 거부 반응 증세를 보여 다시 입원을 해야 한다는 것 이었다.

8월 8일
급히 L.A.로 돌아오니 이미 입원을 하여 또 다시 무수한 피 검사와 주사가 투약되었다.
애리도 다시 풀이 죽어 있었다.

8월 11일
정확한 negative 반응에 대한 원인을 찾지 못했는지 간 조직 검사를 하기로 했고
9시부터 수술에 들어갔다.
애리는 다시 수술을 할 거라는 얘기를 듣고 울기 시작한다.
평생 이렇게 수술하고 병원 신세를 져야 하냐고 두려움과 서러움에 운다.
애리의 손을 꼭 잡고 다시 한번 기도하자고 했다.

다행이 조직 검사 결과 이상이 없는 것으로 판정이 나왔다.

8월 12일

일요일 오전 우연히 복도에서 만난 Dr. Nissen 과 얘기를 하였다.
이상 여부를 물어보니 조직 검사 결과를 바로 확인해 주었다.
담당 의사인 젊고 잘 생긴 이 백인 의사는 친절하기도 했지만 우리와도 잘 통하였다.
애리가 빨리 집에 가고 싶어 할 텐데, 관련 부서를 check 하고 애리 본인 의사를 확인한 다음
퇴원을 시켜주겠다 했다.
일요일 인데도 불구하고 여러 부서 확인을 거쳐 퇴원을 하게 되었다.


애리는 유학생 신분이다. 미국 시민도 영주권자도 아닌 외국인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 국민 수 천명에 이르는 간 이식 대기 환자들이 순번을 기다리고 있다.
미국은 장기 이식 donation 제도가 잘 되어있으며, 대륙을 양분하여 중서부에서 발생하는
모든 환자와 장기 기증자를 network으로 연결하여 24시간 체제로 꺼져가는 많은 생명을 살려 내고 있다.
모르긴 하지만 애리는 하루만 늦었어도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런 애리에게 최우선의 배려가 내려진 것이다.
또 병원비와 수술비를 합쳐 half million 에 이르는 미국다운 bill 이 청구되었다.
애리는 마침 가족 건강 보험 외에 유학생 건강 보험까지 있어 그 엄청난 수술비를 피할 수 있었다.
물론 상당액의 병원비와 약 값이 있었지만..

초기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헤매었지만 Cedars-Sinai 병원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장기 이식에 관한 한 최고 수준이라고 하니.

나는 1999년 세례를 받았지만 거의 성당에 나가지를 않았다.
냉담자라기 보다는 신앙에 대한 자세가 진지하지 못하였다.
하느님께서 시련도 주시고 다시 사랑으로 끌어 안으신다면 나도 하느님의 자식으로 선택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너무나 허약했던 者의 기도였기에 그만큼 절실하였고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받아주셨다. 또 사랑을 베풀어 주셨다.
애리 머리맡에서 기도 드릴 때 내려진 빛은 주님께서 보내주신 은혜의 메세지라고 믿는다.
그리고 주님께 드린 약속 다시 한번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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