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26주일]춘천교구주보-이흥섭 라우렌시오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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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성우 세자요한 신부 | 작성일1998-09-27 | 조회수8,473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춘천주보]
죽었던 자가 다시 살아나야 회개? 이흥섭 라우렌시오 신부/ 설악동 성당
오늘 우리는 항상 잔치를 벌이고, 호의호식하고, 사치에 극을 다하는 부자와 먹을 것이 없어서 식탁에서 떨어지는 빵 부스러기로 주린 배를 채우던 가장 가난하게 표현된 라자로를 보게됩니다. 둘의 운명은 달랐습니다. 부자는 죽어서 땅에 묻히게 되고 불쌍한 라자로는 죽어서 가장 영광스러운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위로를 받습니다.
살았을 때 위치와 죽었을 때 위치가 뒤바뀜을 우리는 보게됩니다.
우리는 이렇게 위치가 바뀔 것을 알고 주님께 의탁하고 바라고 믿습니다.
지금 불행하더라도 그것이 불행이 아님을, 지금 행복하더라도 그것이 행복이 아님을 우린 오늘 복음을 통해 이해할 수 있으며, 불쌍한 라자로의 행복안에서 우린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어떤 가정이 가난하게 살 때는 부부 금슬이 좋아서 행복하게 살다가, 어느 날 가정 형편이 좋아지고 돈을 많이 버니까 남편이 외도하고 가정일에 관심도 없고 하여서 집안이 행복하지 못하였습니다. 계속되는 불평과 심한 말다툼으로 행복했던 가정은 가장 불행한 가정으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부인은 생각했습니다. '바로 이 놈이군. 아, 이 놈을 없애야겠다'하고는 돈을 몽땅 큰 보자기에 싸서 3층 집에서 문을 열고 날려 버리려고 몸을 반쯤 앞으로 내밀어서 돈보자기를 던지려던 순간, '아니 내가 왜 이러지?'하면서 생각을 바꾸어 던지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분명히 자기를 괴롭히는 물건이지만, 우리는 옆에 둠으로써 안정과 평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시한폭탄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나를 파멸시킬 수 있는 이것을 우린 과감하게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부자가 자기 아들의 구원을 위하여 경고하도록 해 달라고 하지만 불쌍한 라자로를 안고 있는 아브라함은 그에게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이 있으니 그의 말을 들으면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고통받는 부자는 더 강한 증거가 있어야만, 자신의 안일한 생활에서 회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의 말을 듣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어떤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루가 16,31).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인 성서와 교회의 가르침은 항상 우리 곁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가르침에 마음을 두기보다는 현실적인 안일과 평안함에 우리 자신을 맡기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자이면서도 삶은 마치 땅에 묻히는 부자의 생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진정한 삶과 행복이 물질의 향유와 소유가 아님을 우린 지혜롭게 판단하여야 합니다. 오늘 부인은 자기를 불행하게 만든 물건에서 과감하게 빠져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일생 불행하게 불평을 하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재물의 유혹은 죽었던 자가 살아나더라도 회개가 어렵다는 것을 우린 알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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