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어머니의 묵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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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철붕 | 작성일1998-10-22 | 조회수8,101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아래의 글은 미주판 평화신문 '말씀'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어머니의 묵주 정비오 신부 (알바니 성 가정 성당)
천주교 신자들은 누구나 묵주 하나 정도는 몸에 지니고 다닌다.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거나, 손가락에 끼고 다니거나 혹은 차 속에 걸고 다닌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묵주 기도를 위한 것이 아닌 장식품이나 자기를 지켜 주는 소중한 물건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지니고 다니는 것 같다.
물론 갖고 다니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지만 기도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묵주는 본래 기도할 때 사용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기도할 때 사용하지 않고 장식품으로 이용된다면 성모님께서 좋아하시지 않으실 것이다. 나도 사제이지만 묵주를 장식용으로 생각했던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의 생각은 바뀌었다.
내가 신학생 때의 일이다. 하루는 어머니께서 묵주기도를 바치자고 하셔서 묵주를 찾던 중 어머니의 묵주를 보고 놀랐다. 커다란 묵주 알들이 절반 정도 닳아져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어떻게 이 굵은 묵주 알들이 이렇게 닳아질 수 있을까?' 이유를 여쭤 보고 싶었지만 그 때는 물어보지 않았다. 그 후 나는 묵주기도를 바칠 때마다 어머니의 묵주를 생각했다. 그러면서 나는 차츰 어머니의 묵주가 닳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어머니께서 온갖 정성을 다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기도를 바쳤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 후 나는 내 묵주가 어머니의 묵주처럼 되기를 바라면서 기도했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나의 묵주는 변함없이 예전 그대로였다. '왜 내 묵주는 그대로 일까?' 이유는 어머니만큼 정성과 사랑이 담긴 기도를 바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랑과 정성이 담기지 않은 기도는 아무리 많이 바쳐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어머니는 신학교에 다니는 자식을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해 기도했기에 그렇게 굵은 묵주알도 닳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신부인 나는 기도할 때에 정성을 다하기보다 의무감에서 습관적으로 기도하거나 아니면 바쁘거나 피곤하다는 이유로 아예 하지 않을 때도 많다. 이런 나의 기도로 어떻게 묵주를 닳게 할 수 있겠는가. 그 후 나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좀 더 정성을 다해 묵주의 기도를 바치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지금 묵주의 달을 보내고 있다. 누구나 이 달만큼은 그 어느 달보다 묵주기도를 많이 바치며 살아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정말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드믄 것 같다. 성모님은 우리들이 많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나의 가족이 또 나의 이웃이 나의 기도를 필요로 하고 있다. 나는 사제가 된 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견딜 수 있었고 또 견디어 나가는 것은 바로 사랑하는 어머니의 기도 덕분이다.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우리의 기도 덕에 세상의 어려움을 이내며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그들을 위해 정성과 사랑을 담아 기도해야 한다.
나는 미국 성당에서 평일 미사 후 묵주기도를 바치는 노인분들을 자주 보게 되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그들을 통해 나는 새로운 힘을 얻는다. 이제 우리도 묵주를 장식용이 아니라 기도의 도구로 사용하자. 그리고 혼자만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모여 기도하자.
그러면 그 모습은 더욱 아름다울 것이며, 가정은 저절로 성가정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의 작은 기도가 온 세상에 기쁨이 될 수 있다는 희망과 믿음으로, 나를 위한 기도가 아닌 가족과 이웃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며 묵주의 달을 보내도록 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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