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감실 안에 계신 예수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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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신영미 | 작성일1998-12-05 | 조회수6,217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소화 데레사 (축일:10.1일)는 가르멜에 입회해 수도원에 들어선 순간 "길이 길이 여기에 머무르리라" 기도 한다. 나에게 어디에 머물고 싶은가 묻는다면은 감실 앞이다. 묵상적 장소는 다르지만 형태적 장소는 감실 앞이다. 감실 앞에서는 마음이 편안하다. 잠(?)을 자기도 하고 먹기(?)도 하고 쉬기도 하고 노래도 하고 그냥 있고 싶다. 남들과 함께 있을 때는 그분들에게 판단의 죄를 범하게 하지 않기 위해 조심 스럽게 움직이나 나 홀로 그분 앞에서는 아무런 망설임이 없다. 엄마 앞에서 뛰노는 아이 마냥 그분이 계시고 내가 있다. "너희 하느님 야훼를 모시고 너희 집 식구들과 너의 종들과 기뻐하며 즐겨라." 신명기에서 과월절을 정의한 말 중에 가장 좋아하는 말씀이다. 하느님을 모시고 사는 삶에 즐거움 감실 안에 계시는 주님, 주님이 왜 빵으로 남으셨을까? 포도주로 남으셨을까? 묵상해 본 적이 있는데 형태적 지속성이나 보관의 편리할 것이란 이유도 맘에 인상적 이였지만 가장 인상 깊게 묵상한 것은 늘 필요한 모습으로 늘 채워주시는 모습으로 오신 것이라는 것이다. 토착화로 생각 하며는 밥으로 오신 주님 책을 매일 읽지 않는 사람은 있어도 기도를 매일 안 하는 사람은 있어도 매일 자신의 위를 비워 두는 사람은 없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어떤 음식으로든 위를 채우고 힘을 얻는다. 주님은 사람들이 늘 자신을 필요로 할 수 있는 모습으로 이 세상에 남으신 것이다. 작은 제병으로 무슨 요기가 될 것인가 할 수도 있겠지만 보관의 용이함으로 그렇게 되었을 뿐 옛날에는 정말 요기가 되어 먹울 수 있는 크기 였고 나는 공복재를 아주 철저히 지키는 편인데 봉성체 받았을 때는 그 전날 밤 12시부터 성체 영할 때까지 최고 열 다섯시간 동안 물 한 모금 안 모시고 공복재를 해 보았고 이사를 온 뒤로는 미사 전 한 시간 전에는 물도 안 마시려 하면서 영성체를 하는데 (교회법에는 영성체 전 30분 까지는 섭취해도 된다) 빈 속에서 느껴지는 예수님, 그 충만감 평안함 포만감 영성체 후 기도하면서 예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란 동안 확실히 알 수 있다. 정말 나의 모든 것을 채워 주시고 계시는 분이 주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이 비워져 있다는 깨달음이 없다면은 알 수 없는 기쁨이고 자신의 비워져 있다는 것에 상징으로 공복재를 지키고 자신을 채울 수 있다는 것에 상징으로 공복재르 지키고 성체를 모시는 것이다. 물론 융통성이라는 것은 필요 하기에 어쩔 수 없는 상태에서 공복재를 지키지 못 했어도 주님을 모시고 싶다는 소망이 크며는 모셔도 된다고 여겨 모신다. 남들이 다 모시라 나가는데 나는 모시지 못 한다면은 이상한 생각할 것이라든가 으레 모시는 것이니깐 모신다고 하는 것은 불순한 생각이므로 모셔도 소용이 없지만 '제 육신의 힘을 얻고 영혼의 힘도 얻으려 합니다' 라는 의미로서 성체를 모시는 것은 절대로 거절하지 않으실 주님 이시다. 육체의 공복재 만큼이나 영혼의 공복재는 꼭 필요한 것이니깐 봉성체 9년 동안 모신 예수님보다 이사 온 후 반년 동안 모신 예수님이 더 많아 본 사람은 안다. 성체를 모시는 것이 얼마만한 기쁨인지 그리고 그 앞에 머무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감실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방문하고 같이 있는 시간은 내게는 결코 익숙해져 습관화 되어 버린 나태한 일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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