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저절로 자라나는 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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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신영미 | 작성일1998-12-20 | 조회수6,104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 이것이 내가 다른 이들과 어울리면서 할 수 있다고 여긴 일이다. 같이 있어 주는 것으로서 할 수 있다고 본 방법이다. 사랑하는 방식이다. 남에게 내가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많이 묵상 했을 때 기도 해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식별 했고 기도 한 것에 활동적인 모습이 이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 였다. 근데 기도 안에서는 가능 했던 것들이 현실에서 잘 되지 않고 있다. 삶이라는 것에 어려움이 없을 수 없지만 정말 참으로 본다는 것 듣는 다는 것 느껴서 생각하고 말한다는 것이 점점 더 모호해 진다. 오늘 복음에서 요셉은 그의 입자에서는 마리아의 배신이 드러나 알게 된다. 어느 해석에서는 마리아가 요셉에게 말 해 주었다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드러나다 란 말에 어감은 말해 주지 않았는데 알게 된 같은 인상을 준다. 요셉은 그것을 알고도 마리아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정직함을 고수하려고 한다. 다른 이들에게 드러내지 않고 파혼하려고 했으니깐 ….. 요셉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즉 파혼과 다른 이들에게 할 수 있는 고발을 하지 않고 마리아가 그를 임신 시킨 사람에게 갈 수 있도록 파혼을 해 주려고 한다. 그 시절 이스라엘에서는 결혼의 성립과 파혼의 권리는 어른 남자와 신랑측에게만 있었다. 요셉은 감정적이지 않았고 자신이나 남에 대해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었고 그리고 그것을 실천 할만한 결단력이 있었다. 늘 나에게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가 묻고 있지만 묵상 속 내 모습은 그렇지 않다는 것 바른 말과 행동이란 남의 기준의 두지 않고 할 수 있어야 하며 내가 옳다고 해도 다른 이에 의견을 들어줄 여유가 없다면은 그것은 참으로 듣는 것이 아니기에 반성을 해야 할 일이다. "사랑하라 그리고 행하라"고 성 아오스딩이 말씀 하셨는데 정말 사랑해서 그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인지 묵상해 봤을 때 언제나 억울해 하기만 할 뿐 나는 할 수 있는 한 하는데 알아 볼 안목이 없다고 하면서 자기 만족의 시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정말 다른 이에게 사랑을 다해 전하고 행한 것이라면은 그 결과가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르더라도 하느님께 맡긴 것이라면은 뒤 돌아 보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씨를 뿌리고 자란 씨가 커 가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이지 가꾸어 가는 이도 추수하는 이도 아닌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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