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福의 궁극적인 열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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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신영미 | 작성일1999-01-01 | 조회수5,020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오늘 아침에 구약과 신약을 펼쳐 지는대로 읽었는데 아주 기가막히게 연결이 되어 묵상하는데 참 기분이 좋았다. 성서봉사자 분들 말씀 중에 짝성서라는 것이 있는데 오늘 말씀이 개인적으로 짝성서로 느껴졌다. 그 성서 말씀은 신명기 28장1-14절과 마태복음1장 1-12절이다. (파일로 첨부하였으므로 따로 찾고 싶지 않은 분은 다운받아 읽어 봐 주십시오 MS로 넣었는데 만약 깨진다면 텍스트 파일과 훈민정음 아래아한글 중 택하여 메일로 연락 주시면 개인적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것이 싫다면은 가톨릭 정보에서 성서 부분의 가 클릭을 해서 읽어봐 주십시오 저도 그 방법으로 복사를 해서 파일로 만들었습니다.) 그 두 성서가 왜 내게 짝성서로 느껴지는가 하면 신명기에서 모세는 하느님을 믿었을 때 받는 복을 설명해 주는데 그렇게 기가막히게 좋을 수가 없다. 어느 점쟁이 어느 종교에 가도 그와 같은 복을 만날 수 있을까 싶다. 나가도 받고 들어와도 받으며 하는 일마다 머리가 되면 되었지 꼬리가 되게는 하지 않겠다는 그런 복을 세상에 주는 곳이 어디 있겠는가? 그 다음 마태복음의 말씀은 족보 설명 뒤에 예수님의 탄생을 그리고 있다. 옛날 KBS판 사모곡에 만강의 친부가 이런 말을 한다. "우리 같은 보통의 사람이 역사에 남는다는 것은 복을 받는다는 것은 자손을 낳고 잘 키우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의 피가 그 아이들에 아이들에게 이어진다는 것을 아는 것이 아니겠는가?"하고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맨 처음에 축복도 '너의 자손이 바닷가 모래알처럼 샘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날 거라'는 말씀 이였다. 이스라엘인들이 처음 이집트에 피신 했을 때 간 숫자는 며느리까지 합하여 80명 이었다. 그 수가 출애굽에서는 수만명으로 늘어나고 유대인들은 지금까지의 모진 박해에서도 생명을 자식들의 교육을 첫째로 삼으며 생명을 이어 가고 있다. "돈은 다시 벌며는 되지만 생명은 다시 얻을 수 없고 다른 재산은 다 빼앗겨도 머리에 있는 지식은 누구도 가져 갈 수 없다." 유태인의 이런 의식이 그들을 세계금융과 언론을 좌지우지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유대인은 선택 받은 백성이라는 복을 누렸고 자손을 이어 왔다. 그리고 그 자손으로 불리워 지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기는 하지만 그 언젠가는 자랑스러워 할 날이 있을 것이다. 하느님이 주시는 그 많은 복 중에서 그 만한 복이 더 있겠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고 있다는 것은 여러 번 섰지만 가장 큰 복이다. 내게 주어진 그 많은 복들이 주님을 알게 하고 만나게 해 주는 복이다. 그렇지 않고 세상적으로는 복일지 모르나 하느님을 멀어지게 한다면 저주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 눈에는 내 장애가 천벌이요 고생하는 일인지도 몰라도 내게는 이 보다 더한 복이 없고 하느님이 나를 통해 영광 받고 사랑 받으시기 위해 주신 복이다. 들기 지겨울 만큼 듣고 계시겠지만 '오늘의 묵상' 제 글을 읽어 주신 분들 읽고 게신 분들 읽어 주실 분들 여러분 모두 세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아직 음력 설도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귀청소하고 들을 준비 합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첨부파일: bible.doc(29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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