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평화를 부르는 북어 두 마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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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은정 | 작성일1999-01-26 | 조회수4,304 | 추천수12 | 반대(0) 신고 |
평화를 부르는 북어 두 마리.
아버지는 동생이 두 명 있는데, 그러니까 저에게는 작은 아버지가 두 분이 계시죠. 바로 밑 작은댁은 제가 9살 때 집을 마련했고, 우리집은 제가 17살 때 집을 마련했습니다. 작은 집은 식구도 적고 안정된 직장 이었지만, 우리집은 식구도 많고 또 그때까지 결혼을 하지 않은 삼촌 까지 있었으니까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집은 당연히 배가 아팠어야 할 겁니다. 하지만 그때의 아버지는 눈물까지 흘리시면서, 돈 하나 못 보태줬는데 아우가 벌써 자수성가를 해서 이 렇게 고래등같은 (사실 어린 제가 봐도 고래등은 아니었었죠.) 집을 얻 었다며 좋아 어쩔 줄 몰라 하시더군요. 어린 저도 속이 상했었는데, 아 버지는 성인군자가 아닌데도 왜 그리 좋아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일흔 두명의 제자를 세상으로 파견하십니다. 그리고 어느 집이든 들어가서 '이 댁에 평화를 빕니다.' 라고 말하라며 제자들에게 당부를 하십니다. 우리는 늘 미사에서 으레껏 평화의 인사 를 나누고 합니다. 그런데 실상 가까운 사람들에게 지정한 평화를 빌 어 보았는지 저는 자신이 없어집니다.
작은 댁이 집을 마련하던 날, 부모님은 액땜을 하라는 뜻으로 북어 두 마리를 마련하셨습니다. 물론 우리집 뿐 아니라, 자신의 형제가 집 을 마련했을 때 함께 기뻐하는 일은 너무나 흔하겠지만, 저에게는 흐 뭇한 기억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상대방을 위하여 평화를 빌어 준다는 것이, 단순히 혀끝에서 놀아나 는 그런 의미는 아닐겁니다. 그것은 상대방의 기쁨을 나의 기쁨으로 받아 들이고, 그 누군가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뜻일겁니다. 자신의 이익 과는 상관없이 말입니다.
북어를 마련해 주어야 할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시절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평화를 나눌 수 있는 진정한 기회가 다가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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