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느님과 함께 살다가 사라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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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신영미 | 작성일1999-02-02 | 조회수4,385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하느님과 함께 살다가 사라졌다. 하느님께서 데려 가신 것이다. 어느 분께 묵상 성서 말씀으로 드린 창세기5장24절 이다. 이 성서 구절 갖고 묵상도 짧게 드렸는데 너무 좋다(?) 는 표현과 함께 오늘의 묵상에 실어 보라는 말씀에 이렇게 글을 올린다. 왜 오늘 올릴 수 없겠는가? 묵상은 늘 하고 있는 것인데 말이다. 이 말씀이 내게 참으로 다가왔던 부분은 하느님과 함께 살았다는 표현 때문이다.. 하느님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지키며 살아가는 삶을 뜻할 것이다. 그렇게 알아 묵상 한 후 나 역시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자 결심 했고 이런 표현을 들을 수 있고 적용 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되자 노력 했지만 가끔은 이 세상에서 살아 간다는 것이 너무 슬프고 싫었다. 주님이 만드신 세상은 보시니 참 좋았다 할 세상이지만 그 세상에 나란 사람은 너무 초라하고 너무 비참하다고 생각 했을 때 다음 구절인 사라졌다 란 말이 하느님께서 데려 가셨다는 표현이 맘에 와 닿기 시작 했다. 그래 주님께 피신하자! 이 세상의 삶에서 사라지게 해 주십사고 숨겨 주십사고 청하게 되었다. 주님은 그렇게 들어 주시고 있다고 믿는다. 글을 매일 올리면서 잘 쓴다고 표현을 들으면서 주목을 어찌 되었든 받으면서 숨어 살겠다는 표현이 가당한가 물을 수 있겠지만 내 성녀는 모래알이 되고 싶어 했다. 무시 모욕 천대도 주목 받지 않으면 받을 수 없는 것이기에 철저히 사람 발에 밟히어 없어지고 싶다고 자신의 언니 예수의 아녜스 원장에게 말하고 있다. 나 역시 이 세상에서 두드려 지게 살고 싶지 않고 두드려 지는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여기지 않는다. 단 성녀가 주님을 전하는 것을 하느님을 찬양 받게 해 드리겠다고 결심해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했듯이 나 역시 내 자리에서 하느님을 노래할 것이고 전할 것이며 하느님을 사랑할 것이고 영광을 돌릴 것이다. 내 글이 묵상이 하느님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나란 사람을 자랑하는 것이 된다면 살아 있는 한 다시는 글을 안 쓸 수도 있다. 그러나 주님의 소리가 될 수 있고 다른 이들에게 작은 노래를 들려 줄 수 있다고 믿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자리에서 하는 것이다. 주님이 나를 데려 가는 것이지 내가 주님을 데려 가는 것이 아니기에 주님 저를 통하여 길이 길이 찬미 받으소서 제가 주님께 찬미할 그릇이 되지 못한다면 성모님 안에서 당신을 사랑하며 찬미와 영광 돌리게 하소서 아멘! 아멘!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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