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언제까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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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지형 | 작성일1999-02-11 | 조회수4,337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주님, 언제까지 마냥 저를 잊고 계시렵니까? 언제까지 당신 얼굴을 제게서 감추시렵니까? 시편 13,2
저는 당신 자애에 의지하오며 당신의 구원으로 제 마음 기뻐 뛰리이다 시편 13,6
이 시편에서 시인은 하느님께서 단순히 잊고 계시는 정도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얼굴을 감추시고 계신다고 느낀다. 바로 이 하느님의 돌아서심이 시인의 가장 큰 불안이 되는 듯 하다. 진짜로 다른 이도 아닌 하느님께서 얼굴을 돌려버리신다는 것 이것은 참으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진짜로 세상 사람들의 강성함이나 그들의 고약함이야 어떻게 당해보면 당하겠지만, 하느님께서 돌아서신다면 거의 끝장이라는 느낌을 아니 가질 수 없지. 처음에는 설마하니 하느님께서 얼굴을 감추실리야?, 곧 나타나시겠지. 조금 늦어지시는 것이겠지. 내가 좀 밉기로소니 사무 버리기야 하실라고, 등등의 생각을 하다가 진짜로 하느님께서 완전히 작정하고 얼굴을 돌리셨다라는 생각이 들면, 와!, 무섭지 무서워. 그럼 진짜로 무서운 것이야.
사실상 하느님께서 자신을 잊어버리신듯한 느낌은 매우 두려운 것이다. 이것만큼 두려운 일이 어디 있으랴? 하느님께서 돌보지 않는다면 기댈 다른 무엇이 있을 수 있으랴? 이 때의 선택은 몇 가지 되지 않는다.
이 시인은 어떻게 하고 있나? 시인은 하느님의 자애에 의지하겠노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 자신의 희망을 하느님께 심어두고 언젠가 기뻐하며 노래할 날을 기다리겠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는 이미 은혜를 베푸셨기에 노래한다고 말하고 있다. 놀라운 일이다. 이것은 달리 갈 데가 없어서 머무는 정도가 아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하느님께서 그로부터 얼굴을 돌린듯한 상황 속에서 하느님의 자애를 노래하는 것, 그것이 도대체 가능한 일일까?
어쩌면 시인은 하느님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그는 이미 오랫동안 겪어 보았기에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하느님께서 결국 끝을 어떻게 결말지으실 것인지를 알기에 그는 하느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닌가? 뭐라고 하나? 그냥 다른 사냥개들이 짓는 소리를 듣고 짓으며 따라가던 사냥개는 적당한 곳에서 그만 두지만, 토끼를 눈으로 본 사냥개는 끝까지 따라간다고들 하지. 이 시인은 하느님을 눈으로 본 것이야. 오랜세월 동안 같이 살아온 사람이면, 그 사람이 약간 조금 이상하다 싶을 때도, 결국 그 사람이 일을 어떻게 마무리짓는지 잘 안다고나할까? 즉 시인은 이미 그의 삶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지고 맛보고 대화하며 살아온 것이야. 그렇지. 그러니 그가 어찌 그의 신뢰를 접을 수 있으랴? 그렇지 않을까? 그러니 나도 하느님을 눈으로 뵈어야 하는 것이야. 살아계신 그분을 말이야. 그래야 나의 신앙이란 것이 튼튼해지는 것 아닐까? 그분을 어디서 보지? 하하하.
어쨌든, 사실은 어찌 하느님께서 얼굴을 돌리시랴? 얼굴을 돌리는 것은 항상 나지. 그리고 내가 멀리 도망가놓고는 하느님이 안보인다고 하는 것이지. 내가 눈을 딱감고서는 하느님이 없다고 하는 것이지. 자기가 귀를 틀어막고는 하느님께서 말씀하시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나? 그런데 말이야, 아무리 힘든 상황 속에 있어도, 하느님께서 여전히 함께 계신다는 느낌을 갖게 되면, 속으로 얼마나 당당한지. 하하하. 마치 사태를 한순간에 뒤집어버릴 숨겨둔 비밀 무기라도 있는 듯이 말이야. 하느님 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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