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아담 | |||
---|---|---|---|---|
이전글 | 이전 글이 없습니다. | |||
다음글 | 맑은 눈을 바라보며 | |||
작성자신영미 | 작성일1999-03-09 | 조회수3,700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 아래 내용은 어디까지나 제 사적인 견해이며 묵상 입니다. 신학적으로 증명된 것도 있기는 하지만 가톨릭 교회에 공식 입장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아담 그는 그리스도의 예형으로 불러지는 성서인물이다. 그는 하느님이 최초로 만든 사람으로서 하느님이 다른 창조물을 만드는 것을 보았고 하느님이 그에게 창조 사업을 나누는 역할을 맡었다. 동물들에 이름을 지어 주고 에던 동산을 돌보는 이들을 맡은 것이였다. 그는 하느님이 첫 정을 참 많이 받았다. 하느님은 그를 사랑하고 맘 쓰시어 혼자 있는 것이 안되 보여서 그에게 짝을 주실 만큼 그를 사랑 하셨다. 그는 그에게 하느님은 짝인 하와를 주셨다. 하와가 뱀에게 속아 넘어가 죄를 지었을 때 그것이 여성에 책임이라는 것은 제쳐 두고 오로지 그 일에 사후처리를 보았을 때 아담은 하와를 어떻게 대했는가? 하와는 아담만큼 창조사업에 나눔을 체험하지 못 했다. 하나 그는 달랐다. 그는 창조사업에 나눔을 알았고 기쁨을 알았고 권능을 알았다. 그럼에도 그는 하느님이 자기에게 주신 권력은 누렸지만 그에 따르는 책임은 지지 않았다. 하와를 깨우쳐 주지도 않았고 자신에게 오는 유혹을 물리치지도 았았으면 하느님 앞에서 인정 할 줄도 몰랐고 아내에 잘못을 덮어 줄지도 몰랐다. 그가 몰랐는가? 하느님에 사랑을 몰랐고 창조에 아름다움을 몰랐으며 누리지 못했는가? 하느님이 동산에서 제일 먼저 찾은 것은 아담 이였다. "아담아 너 어디 있느냐?" 하느님은 그만큼 그를 사랑했고 믿었는데 그는 그렇지 못했다. 이에 하느님은 창조사업에 나눔을 여성에게 주셨다. 그 시발은 남자지만 그것을 낳고 키우는 것은 여성에게 넘어 왔다. 남자들은 생명을 낳고 키우는 것에 진정한 기쁨에서 좀 소외된다. 책임은 지지만 그 생명을 낳았다는 기쁨을 모른다. 낳았기에 지금까지에 모든 근심을 잃는 탄생에 신비를 그리고 모든 어려움을 견디며 키우는 보람을 아담의 원죄는 물론 사람들은 하와에 원죄라고 부르지만 이렇게 남자들에게 가장 큰 하느님과에 친교를 잃어버리게 했다. 여성으로서 가끔 묵상하게 되지만 남자들에 거만한, 미숙함,힘에 문화는 하느님에 창조사업을 나누던 기쁨을 되찾기 위한 반작용이자 여성에게 가하는 모든 억압은 그것에 대한 질투가 아닐까 하고.... 여성 장애인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힘들지만 하느님에 신비를 나누어 가졌다는 것으로 난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 너무나 행복하다. 어느 소설에 대사처럼 "죄를 지므로 해서 창조주에 신비를 공유 했다."고 할까? 아담은 아내를 깨우쳐 주지 못하고 하느님을 배신함으로서 인류라는 장에서 장외 인물이 되고 말았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까지 그리고 영성학에서는 마리아에 위치에 대해 많은 의미를 부여 하고 있다. 이 시대에 성모 마리아의 대한 곡해가 많지만 하와는 모든 면에서 마리아의 반대적 예형이지만 하와가 그리스도와 마리아를 이끌어 역사에 퇴장 한 것 같지만 등장한 것이 비해 아담은 그만큼 퇴보 했다. 하느님은 그럼에도 신의를 지켜 그의 자손족보에 그리스도를 넣어 주신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