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4월9일]부활 팔일축제 내 금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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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기쁜소식 밝은세상 | 작성일1999-04-08 | 조회수4,008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4월 9일 평화라디오 기쁜소식 밝은세상 원고]
부활 팔일 축제 내 금요일
독서묵상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 운동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처형되신 후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 새로운 그리스도교 운동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새로운 교회 운동의 바탕은 바로 십자가에 처형되었던 예수님이 부활하시어, 당신을 믿고 따르는 교회와 함께 계시다는 복음이었는데요, 예수님은 돌아가셨지만 예수님의 제자들과 예수님을 믿고 따랐던 사람들에 의해서, 새로운 교회운동은 무서운 속도로 확산되어 나갔습니다. 물론 이 새로운 운동은 유다에서부터 시작하였기 때문에, 그 시작에서부터 유대교의 박해를 피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특히 복음서들이 본격적으로 쓰여지기 시작하였던 70년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에는 유대교 회당과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경쟁과 대결의 관계로 나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오늘 독서에서 우리는 초대 교회와 유대교의 갈등과 대립을 접하게 되는데요, 성전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자를 치유하고 설교하는 베드로의 행동은 성전 경비대에 빠르게 적발되었고, 곧 바로 최고회의에 회부되게 됩니다.
우리는 최고회의의 심문 내용에서 베드로가 예수님과 같은 성전 모독 죄로 취조를 받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신들은 무슨 권한과 누구의 이름으로 이런 일을 하였소?" 잘 알고 있다시피 유대사회는 정치와 종교가 일치된 사회이었고, 특히 성전을 통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지 않았습니까? 따라서 성전 사제들에게 힘과 권한이 집중되어있었음을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최고회의는 베드로가 자신들의 권한을 침해하고 성전의 질서를 어지럽힌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스승이 먼저 그 길을 가셨고, 먼저 그 길을 가신 스승이 옳았음을 하느님께서 인정하셨다고 하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던 베드로는 최고회의에서도 나자렛 예수님에게서 일어났던 일들을 증언합니다. 구약의 예언을 인용하면서 말입니다. 집 짓는 자들은 쓸모 없는 돌이라고 버렸지만, 그 돌이 하느님 집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말입니다.
복음묵상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는 어부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허망하게 십자가에 처형되는 것을 보고 뿔뿔히 흩어져 갈릴레아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갈릴레아 호수의 고기잡이로 다시 돌아오게 된 것이지요.
이날도 날씨가 화창하게 좋았고, 집에 일곱 명 정도의 동료들이 모여 있었지요. 하지만 베드로의 마음은 갑갑증으로 터질 것만 같았나 봅니다. 갑갑증을 견디지 못하고 시몬 베드로가 먼저 나섰습니다. "나는 고기나 잡으러 가겠소."
다른 동료들도 베드로를 따라나서 그물질을 해보지만 소용이 없어 보입니다. 그들은 그물을 던지고 있지만, 마음들은 예수님 생각으로 어지러웠던 것이지요. 밤새 헛탕을 쳤습니다. 그런데 날이 밝아오자 호수가에 웬 선생 같은 분이 한 분 서 계시면서 다정하게 말을 건넵니다. "무엇을 좀 잡았소? 그물을 오른편으로 던져보시오."
예수님의 사랑을 받던 제자가 먼저 '주님이십니다.' 하고 속삭입니다. 베드로도 그분이 주님이심을 알았고, 반가운 나머지 그는 그물을 버려 둔 채 물 속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베드로를 제자로 처음 부르실 때도 스승께서는 똑같은 말씀을 하신 것 기억 나시죠?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빵과 물고기로 아침을 즐겼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집어주시기도 하시고, 숯불에 생선을 구워주시기도 하십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자신들과 함께 계심을 더 이상 의심할 필요가 없게 된 것 같습니다.
봄볕이 유난히 좋은 날들입니다. 우리들도 산으로, 들로, 강가로 소풍을 나가서 예수님과 함께 소풍을 즐기는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머무르시면서 먹기도 하시고 마시기도 하시고 재미있게 이야기도 나누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봄빛과 봄바람을 즐기는 동안에 우리의 마음은 평화로 가득 차 옴을 느낄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쩜 우리의 생활은 봄 소풍과 같은 것이고, 그 소풍에 예수님과 함께 한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오늘도 함께 하소서
예수님, 그날도 날씨가 좋았겠지요. 봄빛은 찬란했고, 호수 주변은 새싹들이 싱그러웠겠지요. 예수님, 당신께서는 당신을 잃고 슬픔과 답답증에 빠져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과 함께 야영을 즐기셨습니다. 빵을 마련하시고 숯불을 피워 생선을 구워주시면서, 당신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부활을 확신하도록 배려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당신을 잃고 두렵고 불안해서 어쩔 줄을 몰랐지만, 부활하신 당신께서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면서 생활하고 계심을 이제는 확신하게 된 것 같습니다.
예수님, 저희들도 당신이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다고 느낄 때는 두렵고 불안하답니다. 당신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는 세상은 상상할 수가 없답니다.
저희들이 기뻐할 때 당신께서는 우리와 함께 기쁨을 나누셨고, 저희들이 슬픔과 괴로움에 잠겨 있을 때도 당신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셨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이 서로 미워하고 전쟁할 때에도 당신께서는 전쟁의 포화 한 복판에서 저희들과 함께 계셨지요. 이렇듯이 당신께서는 우리 자신들보다 더 가깝게 우리들과 함께 하고 계시지만, 저희들은 당신을 우리의 생활에서 가깝게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어쩜 당신은 우리의 생활 속에서 우리와 더 가깝게 머무르고 싶어하시지만, 저희들은 오히려 당신을 우리의 구체적인 생활에서 밀어내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 저희들이 부활하신 당신을 더 이상 갇혀 계시거나 한계 된 곳에만 계시도록 하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십시오. 저희들이 희노애락을 느끼는 우리의 생활 속에서, 부활하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당신의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대 자연 속에서,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가 놀고, 먹고, 일하는 그 속에서 당신의 현존을 느끼고, 당신과 벗되어 우리의 인생이 평화 속에 머물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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