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당을 찾아오는 사람들<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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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선환 | 작성일1999-04-29 | 조회수3,312 | 추천수18 | 반대(0) 신고 |
특별한 만남 <2>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올라가는데(내 방은 3층), 등치고 빵빵한 한 청년이 손가락질을 하면서 나를 불러댔다.
<얘기좀 하고 싶어요! 당신하고! 얘기좀 하고 싶어요!>
순간적인 거부감이 확~ 몰려왔다. 이건 또 뭐야?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무슨 말씀이신대요?> <당신하고! 얘기좀 하고 싶어요! 당신하고! 얘기좀 하고 싶어요!>
첫눈에 보아도 짧은 혀에, 서투른 말솜씨,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럴땐 저 사람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여선 안돼. 그랬다간 무슨 헤꼬지를 할는지도 모르니까.
2층까지 계단을 올라갔던 나는 서서히 1층으로 내려서고 있었다. 그래도 계단 3개를 남겨 두고(일부러 거리를 두고 싶었다. 덩치 때문에.....)
<말씀을 해보세요. 무슨 일이신대요?>
<여기서! 말고! 저쪽으로 가서 얘기합시다! 정신적인 얘기요! 정신적인! 얘기!>
마음속엔 이렇게 해선 도무지 아무런 얘기도 되지 않을꺼야. 뭔가 목적이 있다면 빨리 끝내고 가줬으면 좋으련만 하는 생각마저 났다.
<그래요, 그럼 저쪽에 있는 의자로 갑시다.> <추워요! 너무 추워요! 안으로 들어갑시다!>
며칠째 덥다가 갑자기 아침부터 예년 기온을 되찾았던 바로 그날이었다.
<그러면 이쪽으로....>
자판기가 있는 사랑의 다실(성당에서 붙인 방이름)로 안내했다. 첫영성체 교리를 돕는 몇몇 어머니들이 눈에 들어왔다. 갑작스런 사내의 출현으로 어머니들도 긴장을 했다.
<얘기좀 하게, 자리좀 비켜요!>
지가 뭔데, 처음부터 사방을 오가며 반말에, 명령에, 이걸 확!(참아야 하느니라~) 신부의 눈짓에 어머니들은 분위기를 파악한 듯, 마당으로 나갔다. 그러나 얘기를 시작하려는데 쉬는 시간이 된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뛰어나왔다. 사내는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려고 했다.
<잠깐만! 빈 방을 찾아봅시다>
열쇠로 열고 들어간 방은 비교적 조용했다. 아늑하기도 하고. 어둔 방에 불을 켜자 사내는 마음에 든다는 표정이다. 자리를 권하고 대각선으로 앉았다. 이왕이면 멀찍이서 있고 싶었다. 여차하면 도망갈 준비도 하면서.... 이번에 내가 먼저 얘기를 꺼냈다.
<뭔가 화나는 일이 있는것 같은데, 혹시 내가 (당신을) 화나게 했습니까?> <........> <화나는 일이 있어요?> <예! 화가납니다!> <내가 (당신을) 화나게 했어요?> <.......> <좋아요, 말해보세요. 난 들을 준비가 됐습니다.> <아버지가! ...... 왜? 때립니까?...> <????> <어머니가! ...... 왜? 공부 잘하는 사람만 좋아합니까? 왜? 돈많은 사람만 좋아하고, 나는 항상 야단만 칩니까?>
혀짧은 소리로 더듬더듬 말하는 사내의 말에서 얼른 감잡히는 부분이 있었다. 30분 동안 했던 사내의 얘기는 이랬다.
중학교 중퇴인 사내는 겨우 23살. 지능이 떨어진다고 파악한 가족들에게 그는 항상 천덕꾸러기였다. 인천에서 속셈/피아노/수학/영어 학원을 동시에 개업한 부모와 누나가 있었지만, 사내는 한번도 그들의 가족이 될 수 없었다. 태어나서 이제까지 칭찬이라고는 몇 번밖에 받아본 적이 없던 그는 누구보다도 더 사랑받고 싶은 사람이었다. 수학을 잘 하는 누나처럼 관심있는 과목 수학을 배워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소원이었다. 음악을 좋아했기에 학원에서 딩당거리는 아이들처럼 피아노를 배워서 연주도 하고 싶었다. 돈이 없어서 쫓겨나야 했던 아이의 안타까움은 자신이 것이었기에 자신은 돈이 없어도, '3천원이나 4천원만 받고도 아이를 받아줄' 자신이 있었다. 비록 지금은 돈도 없고 배운 것도 없지만, 언젠가는 학원을 차리고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그 학원을 만들기 위해서 지금부터 돈을 벌어야 한다. '천원짜리 만개를 만들어야 된다'는 그의 말에서 그의 순수함을 읽을 수 있었다.
<그래요, ㅇㅇ씨는 분명히 그 꿈을 이룰 수 있을꺼에요. 지금까지 ㅇㅇ씨는 부모로부터, 그 어느 누구로부터도 칭찬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고, 오히려 야단만 맞았었군요. 그렇지만 나쁜짓을 많이 했다는 것은 자랑거리가 될 수 없어요. 이제부터는 오히려 그 아름다운 꿈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으면 좋겠구요. 참! 춥다그랬죠? 잠깐만.....>
자판기에서 율무차를 뽑아줬다. 마침 주머니 속에 5백원이 들어있었다. 처음엔 사양하던 사내가 싱긋 웃기까지 하면서 율무를 선택했다.
<ㅇㅇ씨가 지금까지 아무런 칭찬을 받지 못한건 그분들의 마음을 채워주지 목했기 때문이겠죠. 그렇지만 이제는 어엿한 어른이니까 좋은 꿈을 이루기위해서 노력할 수 있잖아요? 그렇죠? 얘기했던(수없이 나쁜 짓을 많이 했다는 고백을 했었다) 나쁜 일들은 이젠 다시 안하기로 약속해요. 처음엔 위협적으로 말을 해서 ㅇㅇ씨를 경계했던게 사실이지만, 얘기를 들으면서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여겨졌어요.>
<아니에요, 나는 정말 나빠요! 나쁜 짓을 많이 했어요> <.....> <나는 아이들이 좋아요. 아이들이 나를 뚱보라고 놀려도(실제로 그는 한 몸매를 했다) 나는 화가 나지 않아요. 아이들이 좋아요. 아이들하고 같이 지내고 싶어요> <그것 봐요. 아이들은 얼마나 순수해요. 그런 아이들을 좋아하는 ㅇㅇ씨가 그렇게 나쁜 사람일 수가 없어요. 사람은 어느때 잘못할 수가 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뉘우치고 다시 아름다운 것, 특별히 ㅇㅇ씨가 꾸고 있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다보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에요>
동화같은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의 표정은 밝아졌다. 이젠 어떻게든 얘기를 맺어야 했다. <그래요. 이젠 사람들에게 위협적으로 말하지 말고, 부드럽게 말해줘요. 사람들이 겁먹지 않게....> <네> <....> <천원짜리 명함 돌리러 가야겠어요. 천원짜리를 만개 모아야, 그 천 만원을 가지고 학원을 차릴 수 있어요(벙글벙글)> <그래요, ㅇㅇ씨, 이젠 마음이 좀 가볍죠? 누군가 ㅇㅇ씨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거죠? 이제부터는 지금까지 얘기했던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기로 약속해요?> <예, 그런데, .... , 차비좀....> <아까 ㅇㅇ씨 율무차 뽑느라고 2백원밖에 없는데, .... , 이거라도 되겠어요?> <예, 죄송합니다. 너무 시간을 많이 뺐어서...> <아니에요, 잘 가세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자, 특유의 순진한(?) 모습으로 악수에 응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난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뽀뽀> 악수하는 자기의 손에 뽀뽀를 하라는 주문이다. 도무지 할 수 없어서 <픽> 웃고 말았다. 그는 보무도 당당하게 성당문을 걸어나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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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내가 서 있는 2층에서 나를 찾아온 그 사람이 서 있는 1층으로 내려 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것은, 그를 무조건 경계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를 들어준다는 것이다.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줄 수는 없지만, 그을 들어주고 그와 함께 얘기 나눌 수 있는 것만으로도 상대는 행복을 체험한다.
그런데 ㅇㅇ씨는(나이도 한참 밑에니까, 걔는) 왜 <저 사람하고 얘기좀 하고 싶어요!> 라고 말했을까?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였나?
'99. 4.29. (선환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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