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PBC]6월2일 연중 제9주간 수요일독서 복음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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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한구 | 작성일1999-06-01 | 조회수3,332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PBC기쁜소식 밝은세상] 6월 2일 연중 제9주간 수요일
독서묵상 평소에 주변의 사람들과 달리 의롭게 살고자 노력했던 우리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행과 불의의 사고가 우리를 덮쳤을 때를 상상해 봅니다. 사람들은 올바로 살고 착하게 사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조롱을 합니다. 하느님을 경외하고 올바로 사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면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지 않으면 누구도 보호해 주지 않는다고 소근댑니다. 불행이 닥치고 슬픔만이 우리들을 짓누를 때, 그리고 이것들이 사람들의 공식적인 조롱거리가 될 때 우리들은 꼭 죽고만 싶은 심정에 빠지게 되지요. 오늘 이야기의 두 주인공, 토비트와 사라는 죽음외에 달리 희망이 없는 곤궁 속으로 빠졌습니다. 가난한 동족들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기꺼이 나누어주고, 죽음을 무릎쓰고 살해된 동족들은 묻어주었건만, 토비트는 불행을 만나 장님 신세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내까지 그를 조롱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지요. 사라는 율법을 고수하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가문의 외동딸이었지만, 그녀가 첫 날 밤을 치르기도 전에 신랑이 죽고 말았지요. 그렇게 일곱 신랑이 죽었답니다. 사람들은 사라를 신랑 잡아먹는 악녀라고 조롱했지요. 그리고 마침내는 그녀의 몸종마저 조롱을 하면서 대들고, 차라리 죽어 버리라고 저주를 퍼붓지요. 의로운 사람들이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당하고 소외될 때, 그리고 그들이 인생의 막바지에 이르는 고통에 직면하게 될 때 누구에게 하소연하게 될까요. 물론 하느님입니다. 토비트와 사라는 자신들의 생명을 거두어 달라고 하느님께 하소연하게 되는 데요, 죽음이라는 절박한 상황에서 올리는 그들의 기도가 하느님 어전에 까지 이르게 되고, 하느님께서는 라파엘 천사를 보내서 이들의 고민거리를 해결해 주도록 지시하는데요, 불행한 이들의 신세가 앞으로 과연 어떻게 역전되게 될까요. 복음묵상 예수님과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토론은 인생의 근본적인 물음들을 역동적이고 신랄하게 논쟁했던 것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제는 카이사르의 일은 카이사르에게 맡기고, 너희들은 하느님의 일을 하는 데 신경을 쓰라고 함으로서 로마제국을 무력한 존재로 만들어 버리시더니, 오늘은 죽은 사람에 대한 논쟁에서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에 대한 확고한 당신의 생각을 못박는 것 같습니다. 칠 형제와 결혼한 여인이 부활하게 되면 누구와 살게 될 것인가?라는 질문이 예수님께 던져집니다. 이 질문 자체는 사람들의 습관적인 일상 생활을 그대로 반사하고 있는데요. 예수님께서는 습관된 일상 생활의 사고 방식을 완전히 무시해버리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지요. "하느님 나라에서는 시집 장가가는 일도 없고, 모두가 천사처럼 된다" 고 말입니다. 세상에서는 누구에게 종속되고 누구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문제가 아주 중요하겠지만, 막상 하느님 나라에서는 모두가 하느님께만 속하기 때문에 세상과 완전히 다른 질서 속에서 살게 된다는 것을 함축하시는 말씀이시지요. 사람들은 늘 재산과 상속문제에 집착하고, 이 문제를 죽은 사람들에게까지 연관시키고 있지만, 여기에 대한 예수님의 입장은 아주 단호하신 것 같습니다. 하느님은 죽은 자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사람들의 하느님이시라는 것이지요. 죽은 사람들의 문제는 죽은 사람들에게 맡기고 너희들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일에나 신경을 쓰라는 초대이신데요, 우리들 역시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처럼 우리가 집착하고 있는 문제들에 하느님을 끌어들이고 그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들이 집착하는 우리 문제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하느님 나라를 발견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오늘도 함께 하소서 예수님, 우리들이 집착하고있는 문제들을 생각해 봅니다. 아마 우리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가족제도와 연관된 재산과 상속의 문제가 아닐까요? 사람들은 이러한 문제를 죽은 뒤에까지도 연관시키고 있으니 말입니다. 유다인들이 이 문제를 부활 문제와 연결시켰다면, 아마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우리들은 제사 문제와 연관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당신의 하느님 나라의 비젼에서 보면 이러한 문제들은 한갓 죽은 사람들의 문제에 불과했지요. 산 사람들의 하느님께서 일하시는 하느님 나라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한 형제 자매로서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만이 중요하지요. 어쩌면 예수님 당신께서는 우리들이 사후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지금 우리와 함께 살아 계시는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에 관심을 집중하기를 바라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저희들이 집착하고 있는 문제들, 즉 재산이나 상속, 사후의 부활과 같은 문제에만 매여있기 때문에 하느님도, 하느님 나라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 저희들이 우리자신들이 집착하는 문제들을 벗어버리고, 하느님 나라의 실재 속에 들어 갈 수 있게 이끌어 주십시오. 우리 안에서 살아계시는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 나라의 가치 속에서 숨 쉴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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