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그리스도교적 권위에 대하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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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선환 | 작성일1999-06-06 | 조회수2,714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연중 제10주간 월요일 그리스도교적 사랑의 권위에 대하여 2고린 1,1-7; 마태 5,1-12
바오로 사도가 고린토 교회에 보낸 둘째 편지의 시작은 바오로와 고린토 교회 사이에 생긴 어떤 좋지 않은 관계에 대한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바오로가 고린토 교회 신자 전체와 좋은 않은 상태에 있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아마도 몇몇 신자들과 좋았던 관계가 악화 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인 사이에는 그리스도 교적인 사랑이 감돌고 있어야 했지만, 편지의 내용을 읽어보면, 몇몇 고린토 사람들이 바오로를 한 인격체나 사도로 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따라서 그들 사이에 그리스도교적인 사랑이 심하게 위협 을 받고 있었구나 하는 것을 짐작하게 합니다.
적어도 이번 주와 다음주(연중11주간 토요일)까지는 고린토 후서를 읽게 되는데, 바오로 사도가 고린토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훼손되었던 그리스도교적인 사랑의 관계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가에 주목하면서 독서를 읽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오늘날 우리들 사 이에서도 얼마든지 생길 수 있는 공동체 안에서의 사랑의 위기를 극 복하는데 있어서 작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됩니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바오로 사도가 강조해야 했던 본질적인 원칙 은 [사도로서의 권위](발터 쉘클레, 신약성서 영적 독서(고린토서), 197쪽 참조)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도로서의 권위 를 갖는다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교적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며, 자신 의 권위를 포기함으로써 자유로이 그리스도교적인 사랑을 보여줄 수 없게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왜냐면, [그리스도교적 권위]란 사랑을 보여줌으로써 상대방으로부터 사랑의 응답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권 위라는 점을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기서 사랑이 빠져버린 다면 더 이상 그리스도교적인 입장에서 말하거나 행동하는 것이 아 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학생들과 선생님이 만나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되 는데 학생들이 선입견 때문에 어색한 선생님과의 관계를 이유로 같 이 하는 일에 있어서 선생님을 제외시키거나, 반대로 선생님이 학생 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자신의 주장만을 고집하게 된다면 그들 사이에서는 그리스도교적인 사랑을 전혀 찾을 수 없게 되는 것 이죠. 또 선생님이라고 해서 학생들이 말을 들어주지 않을 때 일방 적으로 화를 버럭 낸다면 자신의 권위에 먹칠을 할 수도 있다는 겁 니다. 그리스도교적인 권위란 휘하 사람들을 소외시킴으로써 얻어지 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때때로 권위를 남용할 수 있는 기회는 언제 든지 있게 마련이지만, 실상 그런 기회를 이용하는 것은 진정한 권 위자의 역할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을 듣게 되는 것은 바로 [그리 스도교적인 사랑]에 입각해서 생활해 나가겠다고 하는 세례 때부터 시작된 우리들의 약속 때문일 것입니다. 단지 세례를 받았다는 이유 때문만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생활하겠다>는 약속을 전제로 세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넓은 의미에서의 [그리스도교적 인 권위와 사랑]은 비단 교리 교사와 학생 사이의 문제에서뿐만 아 니라, 사제와 신자, 수도자와 신자, 신자와 신자, 그리고 모든 단체 와 가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신자 구성원들이 지켜나가야 할 소중한 원칙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진복팔단에 대해서, 곧 세상에서의 참된 행복이 무엇이냐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신자 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성서 구절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예수께서 제시하신 여덟 가지 조목들은 세상살이에서 겪게 되는 불합리한 고통들과 옳은 일을 하면서 당할 수 있는 부당 한 처사들이 록 그 당시에는 괴롭고 힘들겠지만, [그리스도교적인 권위와 사랑의 실천]이라는 점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궁극적으 로는 하느님께로부터 사랑의 응답을 얻게 된다는 희망의 메시지입 니다. 이렇게 '깊고도 조용하며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참 기쁨 과 행복은, 주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매일 미사, 99년 6월호) 특권인 것입니다. 아멘.
선환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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