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PBC]6월12일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독서 복음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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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한구 | 작성일1999-06-10 | 조회수3,356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PBC기쁜소식 밝은세상] 99년 6월 12일 토요일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1. 독서묵상 성모님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오늘 독서에서 한편의 아름다운 시를 묵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빌론 귀양살이를 하는 동안 고향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하신 약속이 이뤄질 거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고향으로 막상 돌아와 보니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는 많은 어려움들이 기다리고 있었죠. 성전을 다시 지어야 했고 페허가 된 도시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했으니까요. 이렇게 몸과 마음이 힘든 시기에 하느님의 돌보심을 기억하고 찬미드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럽기까지 한데요. 오늘 이사야서의 저자는 하느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설레이고 가슴이 뛴다고 고백합니다. 기나긴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하느님께서는 구원의 빛나는 옷을 입혀 주셨고 정의가 펄럭이는 겉옷을 둘러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혼인의 즐거움에 들떠 있는 신랑신부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살피고 꾸며주셨다고 고백합니다. 어렵고 힘겨운 길을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정의와 찬양이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을 보여 주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마치 죽은 듯이 얼어붙은 땅속에서도 살아남아 있다가 봄이면 고개를 내미는 새싹처럼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보아 주시고 생명의 싹을 틔워 주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세상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을 따른 성모님 역시 많은 고통의 순간들을 견뎌야 했을 거라고 짐작이 됩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하느님의 역사, 성령의역사라고 받아들인 성모님. 처녀의 몸으로 임신을 한 사실을 부끄러워 하기보다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위대한 일을 해주셨다고 고백한 성모님, 성모님 역시 이사야서의 구절을 빌려와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는데요. 성모님은 자신은 보잘 것 없는 비천한 여종이지만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해주신 위대한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기쁘고 가슴이 뛴다고 노래합니다.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암흑에 쌓여있는 것처럼 막막한 시간들, 특히 나에게 어떤 불행이 찾아왔다고 느끼는 그런 날들을 하느님의 축복의 시간으로 받아들이는 이스라엘 과 마리아의 마음을 기억해 봅니다. 그리고 그런 날들을 축복의 시간으로 받아들인 신앙인들이 오늘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묵상해 봅니다. 2. 복음 묵상 루가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어렸을 적에 있었던 일을 한토막 소개하고 있는데요. 과월절이 되어 다른 유다인들처럼 예수의 부모도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돌아오는 길에 예수도 일행 중에 끼어 있으려니 하고 하룻길을 가고 나서야 아들이 없어진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아들을 찾아 헤맨지 사흘이 지나서야 겨우 예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어머니들처럼 반갑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동안 찾으러다니면서 애태운 걸 생각하면 말이죠. 어머니는 왜 이렇게 속을 썩이느냐. 너를 찾느라고 아버지와 내가 얼마나 고생한 줄 아느냐고 아들을 나무랍니다. 그러자 어린 예수님께서는 자신은 세상 부모 님 밑에서 성장하고 있지만 하느님께 속해 있는 사람이라고 대답하십니다. 마리아는 이 말씀의 뜻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마음 속 깊이 새기셨습니다. 대부분 어머니들은 조금만 주의하지 않으면 자녀들의 모든 일을 해결해 주는 해결사 노릇을 하게 됩니다. 대부분 어머니들이 자녀들을 창의적이고 똑똑하고 현명한 아이들로 키우고 싶어 합니다. 자기 할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이런 희망사항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아이들이 먹는 것에서부터 오늘 무슨 옷을 입어야 할지 결정하는 것, 노는 것, 배우는 것, 잠자는 시간 모든 일을 하나하나 간섭하고 통제하고 있습니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큰 것까지 모든 결정을 어머니가 하는 이런 분위기에서 자란 아이들의 지능은 민주적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보다 평균 10 정도가 낮아 진다는 통계가 나와 있는데요. 아이들을 한 사람의 인격체로 존중하는 엄마는 서툴더라도 아이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을 지켜봅니다. 어릴적부터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해서 일을 처리하는 아이들은 자신감 있고 책임감 있는 아이로 성장합니다. 아이를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할 때 어머니들은 결코 자녀를 내버려 둘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자녀가 하느님께 속해 있다고 믿을 때 아이들의 판단과 감정을 존중하는 일은 당연하게 받아 들일지도 모릅니다. 성모님도 자식을 키우면서 모든 일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마음 속 깊이 새겨두십니다. 자식이 내 손에 있는게 아니라 하느님께 속해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셨기 때문입니다. 3. 오늘도 함께 하소서 예수님 저희 아이들을 당신께 돌려 드립니다. 아이들은 우리 몸을 빌어 세상에 왔지만 우리에게서 온 것이 아닙니다. 비록 아이들이 우리들과 함께 있다고 해도 우리의 소유물은 아닙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지만 우리 생각대로 아이들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우리들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곳에서 아이들 영혼은 살고 있으며 아이들은 우리들이 꿈속에서도 구경할 수 없는 내일의 마당에서 놀고 있습니다. 예수님 아이들을 우리처럼 만들려고 애쓰지 않게 해주십시오. 우리가 오히려 아이들을 닮기 위해 힘쓰는 부모가 되게 해 주십시오. 성모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저희들도 자녀들이 생각하고 판단할수 있게 지켜보게 하시고 성급하게 해답을 제시해주는 해결사 노릇을 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아이들은 마치 날아가는 화살처럼 우리들의 활시위를 떠나 앞으로 나갑니다. 거룩한 사수이신 하느님께서는 무한대의 시간을 향해 한 표적을 겨냥하여 온 힘으로 활시위를 당기십니다. 화살이 더 멀리 더 빠르게 날아갈 수 있게 해 주시는 분도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의 손길로 우리 아이들이 쏘아져 나감을 즐거워하게 하소서. 하느님께 속한 자녀들의 일을 마음 속 깊이 새기는 부모가 되게 하소서. 그리고 거룩한 사수이신 하느님은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시면서 동시에 활도 사랑하시는 분이심을 믿나이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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