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동기와 목적과 과정의 순수함] | |||
---|---|---|---|---|
이전글 | 이전 글이 없습니다. | |||
다음글 | 오늘 영성체송으로 드리는 묵상 | |||
작성자박선환 | 작성일1999-06-15 | 조회수3,825 | 추천수15 | 반대(0) 신고 |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동기와 목적과 과정의 순수함> 2고린 9,6-11; 마태 6,1-6.16-18
유행을 따라서 사는 것이 멋이 되어 버린 지금, 우리는 개인적이고 은밀하고 고상한 멋을 추구하기보다는 화려하고, 공식적이고, 드러나는 멋을 추구하는 것 이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진한 화장, 요란한 악세사리 등이 당연시됩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는 것은 특권 이라는 생각도 듭니다만, 모든 것은 지나치면 오히려 흠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심지어는 교회에서 봉사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그렇게 자신의 공로를 드러내기 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봉사란 다른 사람을 위해서 드러나지 않게 하는 행동일텐데, 그런 소중한 마음들이 자신을 알리는 것이 최대의 광고라 는 현대의 사고방식 아래서 퇴색해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이런 마음자세 때문에 봉사를 해놓고도 대가를 바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풍토도 생겨나고, 하다못해 공식적인 감사의 뜻으로 마이크를 탄다든지 적어도 박수라도 받아야만 자신들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분위기는 너무 세속적인 것은 아닌지 의문 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즐겁게 봉사를 하고, 이를 알게 된 사람들의 입에 자연스럽게 오르내리는 것은 오히려 새로운 아름다움의 창조라고 생각되지만, 정도를 지나쳐서 공과를 따지는 모습은 추한 작태 그 이상은 아닐 것입니다.
어느 경우 열심하다는 신자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게 됩니다. [신부님, 어느 자 매에게 고통스런 일이 생겼는데, 저더러 기도를 해달랍니다. 어떻게 해야할지 알 려주십시오.] 물론 사제에게 이같은 질문을 하는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 지만 기도가 하느님께 대한 본인의 마음의 표현임을 감안할 때 우리들은 아직도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의사 표시도 제대로 못하는 어린이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아쉬운 점이죠.
또 우리 신자들 사이에는 애경사 때 서로 도와주는 마음으로 한 집에 모여서 기도 모임을 여는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임도 때로는 조심스럽게 열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교회 내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아 한자리를 하고 있고, 이름과 얼굴이 알려져 있는 사람인 경우에는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함께 해주려고 노력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아무래도 소홀해지는 것이 우리들의 한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정서는 무언가를 겉으로 한참 떠벌리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됩 니다. 오히려 은은하게 배어 나오는 마음의 정을 나누기 위해서 은밀하고 고상하 게 그와 같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해 온 것이 조상의 지혜였습니다.
복음에서는 신자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법과 자세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보이 는 선행은 삼가기, 자선의 내용을 감춰두기, 기도한다는 것을 일부러 드러내지 말기, 보이기 위한 단식은 하지말기 등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어떤 의도를 갖고 있는지를 틀림없이 아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시듯, 우리들은 우리 언행의 최종 목적지를 언제나 하느님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 선행의 동기는 하느님께서 내게 보여주신 크신 사랑을 감출 수 없어, 그 사랑 때문에 시작되어야 한다는 순수한 마음을 강조하고 있습 니다. 동기와 목적과 과정을 통틀어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 기를 바라는 순수한 마음이 우리들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아멘.
선환 생각^^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