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PBC]6월15일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독서 복음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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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한구 | 작성일1999-06-16 | 조회수3,209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PBC기쁜소식 밝은세상] 6월 15일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독서묵상 예루살렘 사도회의에서는 기근으로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는 예루살렘 교우들을 위하여 지방교회들이 헌금을 모으기로 결정하였지요. 특히 그리스지역에 많은 교회을 설립한 사도 바오로에게 이 일의 책임이 맡겨졌는데요, 사도 바오로는 그 당시 큰 교회였던 고린토교회의 신도들에게도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헌금에 참여를 독려하는 편지를 보냅니다. 특히 이 편지에서 바오로 사도는 마케도니아지역의 필립비교회가 보여준 자발적이고 정성어린 헌금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요, 자색옷감장사 리디아 부인을 주축으로 하는 필립비교회는 예루살렘교회의 교우들의 처지를 전해듣고 자신들의 형편보다 더 많은 희사를 아끼지 않았고, 바오로 사도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도 헌금을 모아 보냈었고, 바오로 사도의 전도 여행비를 모아서 주기도 했던 유일한 교회였지요. 사도 바오로는 이러한 필립비교회의 열성을 다른 교회들의 모범으로 자주 이야기하곤 했었는데요, 어느 교회보다 물질적으로 풍부했던 고린토 교회는 과연 예루살렘 교우들을 위한 의연금 모금에 얼마나 열성적으로 참여했을까요? 아마 바오로 사도는 고린토교회에 많은 기대를 거는 것 같은데요, 글쎄요....... 많이 가졌다고 해서 많이 희사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들은 경험으로 잘 알고 있지요. 남을 위한 자선은 아마 상대방의 고통스러운 처지를 이심전심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오늘 사도 바오로 편지를 읽으면서, 사도 바오로께서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무슨 말씀을 하실까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데요. 아마 틀림없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는 북한 형제들을 위한 의연금 이야기를 하시지 않으실까요? 서로 다른 민족들도 예수님 이름아래 한 형제가 되었다고 예루살렘 교우들을 위해서 아낌없이 헌금을 모았는데요, 같은 핏줄을 나눈 형제 자매들이 십시일반의 심정으로 한솥밥을 나누어 먹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동포의 아픔을 보고도 무디어 질대로 무디어진 우리 마음을 필립비 교회와 바오로 사도는 안스러운 마음으로 바라보실 것만 같습니다. 복음묵상 살아가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나 자신을 사랑하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부부가 사랑하고, 부모자녀들이 사랑하고........ 스승과 제자가 사랑하고, 형제들과 자주 만나는 이웃들끼리 사랑하고......... 우리들은 당연히 이 사람들을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영역을 더 확대시키십니다. 원수까지로 말입니다. 사실 구약에는 원수를 미워하라고 하는 말씀이 없다고 하는데요, 이 말씀은 원수를 사랑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일반화된 현실을 이야기하고 싶으신 것이 아닐까요. 원수를 미워하고, 우리에게 잘해주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이 우리들의 일반화된 생활인데요,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모두를 똑같이 사랑하시기 때문이니까요. 혹시 우리들은 하느님께서 잘 봐 주실 것이고, 우리의 원수들을 벌하실 것을 은연중에 기대했다면, 예수님은 천만의 말씀이시라고 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에게는 똑같이 골고루 햇빛과 비를 내려 주시는 분이시니까요. 그러니 혹시 원수가 있다면 미워하지 말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하느님을 닮는 사랑이니까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나, 자기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잘해주게 되지요. 그리고 자신과 관계된 사람에게 잘하게 되는데요, 아마 아무리 극악모도한 사람도 이 정도는 하지 않을까요? 예수님은 하느님의 사랑을 알고,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너희들은 이보다 더 잘 할 수 없을까? 하고 우리들의 일상적인 생활을 꿰뚫어 보시는 것 같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하는 것에서, 그리고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에서 우리들은 조금만 더 잘할 수는 없을까요. 아무 차별 없이 내려주시는 햇빛과 비처럼, 우리들의 사랑도 차별 없는 하느님의 사랑을 닮을 수 없을까요. 오늘도 함께 하소서 예수님, 당신께서는 온 우주에 차별 없이 내리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보셨습니다. 햇빛과 비가 차별 없이 골고루 내리듯이, 하느님의 사랑은 선한 사람이든 악인이든 그 위에 골고루 내리고 있었지요. 예수님, 당신은 하느님의 사랑을 닮고, 그 사랑 속에 살고 싶어하셨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원수까지 사랑하시는 당신의 사랑을 사람들은 당신의 가장 독특한 모습으로 기억하게 된 것 같습니다. 원수까지를 사랑하신 당신의 사랑은 마침내 우리도 당신처럼 사랑하라는 초대를 부릅니다. 하지만 예수님, 우리들의 사랑은 어떻습니까. 저희들은 아직도 내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만 사랑하고, 잘해주고 좋은 사람만을 사랑하지요. 혹 어쩌다 원수가 생기게 되면 우리의 마음 속 깊은 데서는 하느님이 원수를 벌해주시지 않을까 하는 나쁜 마음까지 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상처 입히고 파괴하면서까지 말입니다. 이렇듯 우리의 사랑은 차별적이고 계산적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 우리들은 여기서 한 발짝씩 더 나갈 수는 없을까요. 우리 마음 안에 금그어 놓은 한계들은 넘어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차별 없이 모든 것을 좋아 할 수는 없을까요. 아마 첫 발자국 떼기가 어렵겠지요. 하지만 예수님, 저희들이 우리의 한계에서 조금만 더 사랑으로 나아가게 하여 주십시오. 좀 더 잘할 수 없느냐는 당신의 초대에서 힘을 얻게 하여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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