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주님의 산에 올라 갈 이가 누구인가? | |||
---|---|---|---|---|
이전글 | [상대방의 잘못은 내 인생의 거울] | |||
다음글 | [황금률] | |||
작성자신영미 | 작성일1999-06-21 | 조회수2,841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주님의 산으로 올라, 거룩한 그곳에 서 있으리라.
인생이나 신앙을 비유 할 때 산으로 올라가는 것으로 비유하는 것이 많다.
십자가의 성 요한의 '갈멜의 산길'도 그렇고 힌니 버너드의 '높은 데서 사슴처럼' 이라는 어른을 위한 우화집에서 그렇고 시편에서도 더욱 그렇다.
왜 인생이나 신앙을 항해나 산행이라고 할까? 그것은 순례이면서 떠남이고 모험이라고 그럴 것이다.
오늘 아브라함은 떠나라는 말을 듣는다. 그 떠남은 사실 유목민족인 그에게는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익숙한 일이면서도 어려운 일로 우리에게 각인된 것은 주님이 단순이 몸이 떠나는 것을 요구하지 않고 맘을 정체성을 또 우유부단한 것으로 부터에 탈출을 의미해서 일 것이다.
그에게 몸을 움지여 가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본능적인 마음이라고 할까?
그럼에도 주님은 그가 머물 수 있는 곳을 마련해 주신다고 약속 하셨다.
그곳은 단순이 몸이 갈 수 있는 곳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가나안은 그리 먼 곳이 아니였고 그는 여러 번 그곳에 가 보았던 것이다.
바울이 지적한 것처럼 아브라함이 떠나 온 것은 고향이 아니라 그를 나태 시키는 모든 곳에서 떠나 옴 이였고
그는 그것을 알았기에 일생 떠돌아 다닐 수 있었을 것이다.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지 않는 이는 거룩한 것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없다. 또 거기에 서 있을 수도 없다. 신앙은 언제나 식별이며 선택이고 실천이다.
하느님은 지금 이 순간 대단힌 일을 하라고 하시지 않는다. 그것은 당신이 하신다고 하신다.
지금 당장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느님이 아닌 그 모든 것에서 떠나감이고
그분이 지금 이 순간 일러 주는 일 뿐이 아니라 장차 보여 주실 일 까지 따르는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