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6월30일 독서 복음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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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한구 | 작성일1999-06-28 | 조회수3,595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6월 30일 연중 제13주간 수요일 독서묵상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브라함과 사라와 이사악, 그리고 하갈과 이스마엘의 이야기를 통해서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을까요? 100세에 이사악을 본 아브라함은 이사악이 그의 이복형 이스마엘과 친하게 노는 것이 기뻤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라는 그것이 못마땅했지요. 그래서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아 달라고 청합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였을까요? 아브라함은 할 수 없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얼마간의 양식과 물을 주어서 광야로 보냅니다. 젊은 아녀자와 어린아이에게 광야는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곳이었을까요? 절망에 빠져 죽기를 결심한 하갈은 차마 자식이 죽어 가는 것을 볼 수가 없어서 멀리 떨어져 자식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는데요. 아이의 울음소리가 그녀의 심장을 후벼파는 것 같습니다. 하갈이 절망과 고통에 떨고 있는데요. 바로 그 순간 하느님의 도우심이 천사를 통해 전달됩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마엘의 울음소리를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마엘도 큰 민족이 되게 하실 것이니 어서 용기를 내어 아이를 돌보라는 전갈입니다. 그리고 이스마엘은 마침내 사냥하는 사람들의 조상이 되었다는 이야기인데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나안에 정착해서 살면서 여러 다양한 민족들을 만났고 이들과 화목하게 살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요? 아마 그런 이유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 선조 때의 이야기를 하면서 주변의 다른 민족들도 아브라함의 피를 나눈 형제들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을 것 같습니다. 농경과 유목 생활을 주로 하던 이스라엘은 주변의 기마와 사냥을 주로 하는 다른 민족과도 화목하게 지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들은 같은 선조의 피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거지요. 뿐만 아니라 장자 상속의 권한이 절대적인 사회에서 하느님께서는 서자도 장자와 똑같이 보호하시고 성대하게 하신다는 메시지가 은근하게 감춰져 있는 것 같습니다. 약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에 한없이 마음 쓰시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복음 묵상 예수님의 구마 기적은 많은 것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특히 오늘 무덤 사이를 배회하는 마귀 들린 사람의 구마 기적 이야기는 예수님의 구마 기적의 전형적인 모델이라고 하는데요. 마태오는 이 이야기를 마르코에서 인용해 오면서 이야기를 간단하게 축소시킨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의 원래 형태를 간직하고 있는 마르코와 루가 복음의 병행 구절을 함께 보면서 묵상하기로 하지요. 먼저 마귀 들린 사람은 너무나 힘이 세서 아무도 접근 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아무도 그를 묶거나 제지시킬 힘이 없었다고 하지요. 어떤 강력한 힘을 상상해 볼 수 있을까요? 그는 무덤을 배회하고 밤낮으로 포악하게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겠지요. 하지만 예수님을 보자 그는 "왜 우리를 간섭하느냐? 왜 우리를 괴롭히느냐?"고 저항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마귀의 권세를 간섭하고 무력화시키는 작용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마귀는 그의 이름을 '군대'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쉽게 로마군대를 생각했겠지요. 강력한 힘으로 자신들을 괴롭히고 공포에 떨게 하는 로마군대를 말입니다. 마귀는 돼지 속으로 들어가게 해 달라는 말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이스라엘 사람들은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돼지를 키우지 않았지요. 따라서 이 이야기가 상징적인 사건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군대라는 이름을 가진 마귀는 이방인을 상징하는 돼지 속으로 들어가고 돼지들은 바다로 떨어져 버립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유다인 청중들의 머리에는 로마군대가 바다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을 통쾌한 마음으로 상상하지 않았을까요? 예수님은 구마치유를 받은 사람을 다시 가족에게로 돌려보내십니다. 모든 치유기적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구마 기적의 근본은 환자를 다시 사회로 복귀시키데 있었지요. 소외와 버려짐으로부터 다시 받아들여짐에 있었습니다. 오늘도 함께 하소서 예수님, 당신의 구마 기적이야기를 전해들은 유다인 청중들은 얼마나 통쾌했을까를 짐작해 봅니다. 자신들의 삶과 행복을 짓밟고 포악하게 굴던 로마 군대들이 돼지처럼 바다로 침몰하는 것을 상상하던 청중들은 가슴이 시원해지는 통쾌함을 맛보았을까요? 예수님, 하느님 나라는 그렇게 우리에게 오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자유와 행복을 짓밟고, 우리를 불행과 질곡 속으로 몰아 넣는 세력을 무력하게 만들어 버림으로서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하느님 나라의 자유와 기쁨과 행복 속에서 머물러 있지 못하게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요. 무엇이 우리의 삶, 우리의 인생을 고생과 질곡으로 몰아 가고 있는 걸까요. 돈?, 집착?, 욕망? 아니면 우리들을 이 모든 것에 빠지도록 이끄는 사회분위기일까요? 혹은 IMF?........... 예수님, 저희들도 저희들을 괴롭히고 억압하는 세력들이 바다 속으로 침몰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악과 대항해서 싸워야 되겠지요. 저희들이 악의 힘에 무력하게 우리 자신을 양보하지 말게 하여 주십시오. 저희들이 저희들 안에 내재해 있는 하느님 나라의 힘을 깨닫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 저희들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방해하는 온갖 가지 잡동사니들을 몰아내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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