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7월1일 독서 복음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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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한구 | 작성일1999-06-28 | 조회수3,222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7월 1일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독서묵상 아브라함과 이사악이 산으로 오르는 광경을 상상해 봅니다. 이사악은 장작을 등에 메고 아브라함은 손에 칼과 불씨를 들고 가고 있습니다. "아버지 하느님께 바칠 어린양은 어디 있어요?" 이사악의 질문에, 아브라함은 제물을 쓰일 어린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것이다."고 대답하였지만, 그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본 아들인데....... 아브라함에게 이사악은 사실 보통 아들이라는 의미와 달랐지요. 백세에 얻은 아들, 그는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미래이고 생의 전부였으니까요. 하느님께서 그의 인생에 있어서 땅과 민족을 약속해오셨는데요. 이제 백세가 훌쩍 넘어, 살만큼 다 산 아브라함에게 이사악은 땅과 민족에 대한 하느님의 약속이 꼭 이루어 질 것이라는 징표이고 희망이었지요. 하지만 돌연히 하느님께서는 이사악을 자신에게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땅과 민족에 대한 약속을 거두어 가시는 걸까요? 아브라함은 자신의 모든 것을 상징하던 이사악을 하느님의 명령대로 제물로 바치기로 합니다. 하느님께서 일생을 통하여 약속하시고 주셨던 모든 것을 한꺼번에 가져가시겠다고 아브라함을 시험해 오십니다만,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앗아가도 하느님에 대한 그의 믿음에는 조금도 동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시험을 우리 인생에서 시험해보기도 하시는데요. 그 때 우리는 어떤 마음일까요? 만약 하느님께서 우리에게서 모든 것을 다 앗아가더라 해도, 하느님의 사랑을 신뢰하는 우리 마음이 변치 않고 남아 있을 수 있을까요. 복음묵상 현대의 바쁘고 고달픈 생활 때문에 40대 남성들이 과로로 쓰러지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습니다. 그만큼 중풍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병이 되어 버렸는데요. 중풍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자신 만만하던 사람에게서 삶에 대한 열정과 환희를 순식간에 앗아가 버리고 말지요. 처음 중풍에 걸린 사람은 계속해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내 인생이 왜 이렇게 돼 버렸나 하는 회한의 눈물일까요. 비틀어진 손과 발, 굳어버린 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먹고 배설할 능력조차 없어져 버린 자신의 무능력함 앞에 눈물만 앞을 가리고 마음을 심한 수치심과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된다고 합니다. 지은 죄 때문에 천벌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사람들에 의해서 들것에 실려 예수님 앞에 오게 된 중풍병자도 그랬을 것 같습니다. 그 자신도 죄 때문에 하느님의 벌을 받고 있는 것이고, 주위 사람들도 그렇게 인정을 했겠지요. 이스라엘의 전통에서 병은 죄의 결과이고, 하느님만이 그 죄를 용서해주실 수 있다고 믿고 있었으니까요. 따라서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안심하여라. 네 죄가 용서받았다."고 말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깜짝 놀라는 것도 당연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시는 거니까요.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용서를 사람도 할 수 있다고 몸소 행동으로 증명해 주시니까요. 사람들은 그저 눈이 휘둥그레해져서 바라보고 있을 뿐이지만, 중풍병자는 자신의 삶에 용기와 힘을 되찾고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요를 들고 걸어 나갑니다. 만약 우리가 삶의 의욕을 잃고 죄책감과 절망에 시달리고 있다면,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오늘도 함께 하소서 예수님, 갑자기 중풍을 만나 뜻하지 않게 인생이 좌절당한 중풍병자들을 생각해 봅니다. 수족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고, 혀가 굳어져 말도 제대로 못하고 음식물도 흘러내립니다. 때로는 간난아기 아닌 간난아기처럼 지내야 하는 병자도 있는데요. 심한 수치심과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는 그들이 편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들 마음에 인생에 대한 꿈과 의욕이 다시 꽃피게 하여 주십시오. 중풍병자를 돌보는 사람들을 축복하시어 그들에게 인내와 기쁨을 솟구치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 어쩌면 우리들은 정신적인 중풍에 걸려 있으면서도 그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하는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멀쩡한 사지를 하느님 나라를 위해 사용할 줄도 모르고, 혀가 굳어 대화할 줄도 모른 채 정신적으로 마비상태에 있는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예수님, 그 동안 태만했던 저희들 죄를 용서해 주시고, 저희들이 받은 은총의 선물들을 하느님 나라와 이웃을 위해 사용할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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