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원의 전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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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선환 | 작성일1999-07-07 | 조회수3,117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구원의 전령> 창세 41,55-57; 42,5-7ㄱ.17-23ㄴ; 마태 10,1-7
얼마전에 시내에 나갔다가 그 뜨거운 도시의 폭염 속에서 때국물이 흐르는 얼 굴로 [엄마]를 찾으며 대성통곡을 하는 남자 아이 한 명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 찌나 우렁차게 우는지 금방 그 애의 엄마가 나타나서 [음, 울지마, 엄마 여깄어] 라며 아이를 달래서 데리고 갔습니다.
그 상황을 보면서 어릴 쩍 엄마를 따라서 시내에 나갔다가 많은 사람들 속에서 엄마의 손을 놓치고 당황한 나머지 우왕좌왕 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아이의 눈으로 바라봤을 사람들의 모습은 무표정하고 무서웠는데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엄마와 함께 왔던 길을 더듬어서 찾아갔지만 보이지 않자, 다시 최종적으로 엄마의 모습을 잃어버린 그 자리에 서서 엄마가 나를 찾아와주기만을 바라고 서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길을 잃었다는 불안과 공포가 밀려왔고, 이러다가 혹시 나쁜 사람에게 유괴라도 당하는 것은 아닌지 정말 많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사람들 사이에서 엄마를 발견하곤 달려가서 끌어안았던 엄마의 품은 지금은 따뜻하고 포근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어릴 쩍만이 아닙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처음 가는 장소를 찾아갈 땐 늘 어느 정도의 걱정과 두려움이 따릅니다. 잘 찾아갈 수 있을까? 이 길이 맞는 걸까? 뭐, 그런 생각들이죠.
이렇게 길을 잃는다는 것 혹은 길을 찾는다는 것은 늘 우리들에게 두려움과 걱 정이 앞서게 만들어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열 두 명의 제자를 불러 당신의 일을 도와줄 사도로 삼으시면서 파견하십니다. 그들에게 당신처럼 행할 수 있는 능력 을 주셨는데 악령들을 제어하는 능력과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고쳐주는 능력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이 모두 길을 잃은 어린양과 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계십니다. 어린양은 마치도 어릴 쩍 엄마의 손을 놓쳐서 길을 잃은 아이의 심정과도 같을 것입니다. 그 어린양은 어미 양과 함께 하느님의 나라를 향해서 가던 길이었는데, 그 세상을 향해서 가는 여정 속에서 다른 많은 양들을 만났고 그들이 하는 얘기를 듣느라고 가던 길을 멈추기도 했었고, 생전 처음 가는 길이 낯설어서 두리번거리기도 하다가 길을 가던 많은 양들 속에서 어미 양을 잃고 헤매며 두려움에 떨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그들에게 다가가서 [너희가 찾아가던 그 하늘나라가 다가왔고, 그곳에선 네 어미도 만날 수 있다]고 알려준다면 어린양의 근심과 고통은 평화와 기쁨으로 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하늘나라가 다가왔다](마태 10,7)고 선포하는 얘기가 왜 기쁨이 되어야 하는가는, 이렇게 우리들의 최종 목적지가 바로 하느님 아버지와 함께 지 낼 수 있는 하늘 나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님을 찾지만 헤매고 말았던 길에 서 벗어나서 이제 곧 하늘 나라에 도착하게 된다는 이정표를 발견한 것만큼이나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을 것이기에 [하늘 나라가 다가왔다]는 선포는 [평화와 기쁨]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의 파견을 받은 사도들처럼,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양들을 향 해서 매번 파견을 받는 일꾼 양들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이렇게 길 잃은 사람들 을 찾아가서 안심시키고, 이제 곧 하느님의 나라에서 마음 편히 머물 수 있을 것 이라는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구원의 전령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소중 하고 귀중한 메시지를 전하는 전령이 된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기쁜 마음으 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는 구원의 전령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선환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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