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7월12일 독서 복음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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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한구 | 작성일1999-07-08 | 조회수2,528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7월 12일 연중 제15주간 월요일 독서묵상 모세가 하느님의 부름을 받고 에집트에서 탈출시킨 백성들을 히브리인이라고 합니다. 오늘 독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루게 된 히브리인들의 정체를 암시해 주는데요. 히브인이란 말은 원래 에집트에서 최하층의 사람들인 하비루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지금 식으로 말하면,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강을 끼고 풍족하고 부유한 나라였던 에집트로 행복한 삶을 꿈꾸고 온 이주민이나 외국 노동자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가난한 나라들에서 미국으로 몰려든 이주민들을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지금 미국은 수없이 불어난 이주민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지 않습니까? 이처럼 에집트도 60만 정도로 불어난 히브리인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건장하였기 때문에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고 하는데요. 이에 위태로움을 느낀 에집트 왕실은 이들을 새로운 도시와 신전를 세우는 강제 노역에 동원하게 됩니다. 지금도 에집트의 상징으로 남아 있는 파라오 람세스상이나 스핑크스같은 것이 그때 히브리인들의 노동력으로 만들어 졌던 거라고 합니다. 무임금으로 강제 노역을 시켜도 히브리인들 인구가 도무지 줄어들지 않자, 파라오는 새로 태어나는 히브리인들의 남아들을 모두 죽여버리라는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그 때 에집트는 한 가족을 이루는 오시리스와 이시스와 호루스의 신을 비롯하여 여려 신들을 숭배하는 다신교였지요. 특히 파라오는 오시리스 신이 지상에 나타난 것으로, 파라오는 신으로 백성들을 다스리던 시대였답니다. 하지만 반대로 히브리인들은 유일신을 숭배하였는데요. 히브리인들에 대한 파라오의 폭압으로 해서, 이것은 결국 파라오와 유일신의 대결로 발전하게 됩니다. 복음묵상 오늘 복음은 평화와 사랑을 강조하는 신자들을 당황스럽게 하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고 말씀하시고, 아들이 아버지와 맞서고,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맞서게 하려 왔다고 하시면서, 집안 식구가 자기 원수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들어도 참으로 당황스러운 말씀이신데요. 우리를 묶어 놓는 가장 끈질긴 인연은 집안이기 때문이지요. 특히 나이든 집안 어른이 가장 큰 권위를 가지고 있던 고대 사회에서 아들은 아버지에게,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복종해야 하는 것은 숙명적인 운명이었으니까요. 집안에서 나이든 연장자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귄위의 상징이었답니다. 집안 연장자의 권위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도록 사회가 사람들에게 심어준 신념은, 사람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는데요. 하느님 나라에서는 하느님만이 절대적인 지배권을 가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라고 말씀하셨을까요. 혹시 우리가 집안 식구에 대한 인연을 버렸다고 하더라도, 집안 식구들 보다 더 끈질기고 집요하게 우리들을 괴롭히는 것이 또 하나 남아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일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잃으면 살 것이고, 자기를 얻으려고 하는 사람을 잃게 될 것이라고 말씀신걸까요. 부처님도 이와 같은 내용의 말씀을 하셨는데요. 가다가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자기를 만나면 자기를 죽이고, 가다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고 하셨지요. 우리는 이 말씀들을 통해 우리가 하느님 나라로 가는 여정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느님 나라의 세계로 들어가는데 있어서, 어떤 것들이 과연 걸림돌이 되어 우리들을 방해하고 있을까요. 오늘도 함께 하소서 하느님 나라를 무엇보다 우선하셨고, 이미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 나라의 세계를 보셨던 예수님! 당신께서는 그 아름다운 세계를 미리 들어 가셨고, 우리들을 그 세계로 이끌고 싶어하셨지요. 그래서 당신은 우리들이 하느님의 절대적인 지배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들이 지배당하는 것으로부터 자기를 끊어 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개인에게 절대적인 권위로 지배하던 집안이나 혹은 자기까지 말입니다. 예수님, 우리는 당신의 말씀을 들으면서 지금 우리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권위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봅니다. 결혼을 한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집안의 명예와 이익이 그들을 지배하게 되는 것 같고, 출가한 사람들은 자신이 속해있는 공동체의 명예나 이익, 혹은 그들의 이익을 보장해 주는 자리가 사람들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걸까요. 하지만 여전히 우리 마음을 지배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 당신은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셨지요. 마지막으로는 당신의 목숨까지도 말입니다. 예수님, 저희들도 저희들을 지배하는 권위들을 끊어버림으로서, 하느님만이 우리를 지배하는 세계로 나아가게 하여 주십시오.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겠습니다만, 저희들이 당신께로 나아가는 길에서 만나게 되는 헛된 우상들을, 그때마다 없애버림으로서 참된 길로 정진해 나가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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