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그렇습니다, 아버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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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글 | [PBC]7월17일 연중 제15주간 토요일독서 복음묵상 | |||
작성자박선환 | 작성일1999-07-13 | 조회수2,726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 그렇습니다, 아버지! > 출애 3,1-6.9-12; 마태 11,25-27
매주 화요일 저녁에는 하상 성가대(우리 본당의 남성 성가대)에서 성가 연습을
합니다. 어제는 예비자들에게 미사 전례에 관해서 설명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아
무 생각 없이 교리 장소를 성당으로 바꿨더니 공교롭게도 그제서야 성가대 생각
이 났습니다. 마침 성당도 공사중이라 성가대는 마땅히 연습할 장소도 없이 무려
1시간을 밖에서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지휘자와 단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기는 했
지만 이건 완전히 [사제의 횡포]에 해당하는 잘못이었습니다. 40분만에 끝내겠다
는 약속도 지키지 못하고 1시간을 넘기고 말았습니다.
마당에서 기다리던 성가대가 소리를 내서 야외 연습을 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부랴부랴 교리를 마쳤습니다. 정말 식은땀까지 날 정도로 긴박했던 예비자
교리였습니다. 그럼에도 미안해하는 사제에게 괜찮다는 웃음을 보이며 다시
연습에 열중하는 단원들을 바라보며 30분 가량을 성당에서 떠나지 못하고
어설픈 모습으로 연습에 동참했습니다.
마침 아빠들 가운데 두 분이 여자 아이 하나씩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 중 한
명은 매 주마다 성가대원들과 함께하는 족구 모임에 아빠를 따라 나왔다가 저와
도 안면이 있는 아이였는데, 연습차 성당으로 올라오는 아빠를 따라왔다가 저를
보고는 [신부님~]하면서 안기는 것이었습니다. 어린이가 아무 스스럼없이, 단지
제가 신부라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안면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가와서, 나를 부
르고, 안기는 모습이 참 신기하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아빠들이 연습
하는 틈을 타서 두 아이는 성당 의자 사이를 맨발로 오가면서 장난을 쳤습니다.
신발을 숨겨놓고 신발 찾기를 하기도 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기를 하기도
하고, 한참을 놀다가 지치면 성가대석으로 와서 아빠 한 번 쳐다보고, 반주자 한
번 쳐다보고, 저도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놀이를 하러 성당을 활개치며 뛰어다
녔습니다. 그러다가 작은아이가 [아빠, 쉬~]라고 하자 조금 큰 아이가 [이리와
언니하고 같이 가자]라면서 작은애를 데리고 화장실까지 다녀오는 것이었습니다.
토요일에 어린이 특전에 나온 아이들이 그 모습을 하고 있었다면 저는 인내를
갖고 타이르기 시작했을 테지만, 오늘만큼은 그러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주님께
서는 당신의 성전에서 천진하게 노닐 수 있는 것은 아이들만의 특권이라고 말씀
하실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초등부 교리반에서 아이들에게 자유기도를 알려 주고 시켜보면 어릴수록 쉽고
명료하게 자신의 마음을 하느님께 표현할 줄 압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말은 어
려워지고 복잡해지고, 어떤 아이들은 부끄러움에 입을 열기조차 못합니다. 우리
들이 간직했던 아이 때의 순수와 깨끗함이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이면서 오히려
사람들을 만나고, 나아가 주님과의 진솔한 만남을 여는데 장애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새로운 무엇인가를 배우려고 마음을 먹으면 그 내용
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 새로 시작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순수하게 가
르침의 내용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때로는 우리들이 안다고 하는 것, 똑똑
하다고 하는 것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방해물이 되기도 하는가 봅니다. 주님을 만
나는 일도 그렇습니다. 당신을 잘 알고, 당신에 대해서 많은 공부를 하고, 당신
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독심술이 있는 똑똑한 엘리트를 선별해서 그 사람처럼
되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자기밖에 모르고, 억지를 부리며 때 쓰고, 맘대로 되지
않으면 토라지기까지 하는 철부지 어린이를 불러 세워놓고, 바로 그들에게 [당신
을 나타내 보이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그렇습니다, 아버지!](마태 11,25)라고
하셨던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장 순수했던 첫마음, 첫 봉헌의 때, 세례식, 첫영성체, 견진, 신혼, 입학,
입사, 전입, 서원 등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그 순수의 세계를 오래토록 간직하
며 살아갈 수 있는 우리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경험이 우리를 길들이고, 세월이
우리의 몸을 변화시켰을지라도 마음만큼은 항상 물장구치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
지듯, 주님을 찾고, 주님을 믿고, 주님만을 따르리라고 약속했던 그 때 그 시절
을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선환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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