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미운 오리 새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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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선환 | 작성일1999-07-25 | 조회수3,220 | 추천수9 | 반대(0) 신고 |
연중 제17주간 화요일 <미운 오리 새끼> 출애 33,7-11; 34,5ㄴ-9,28; 마태 13,36-43
백조 한 마리가 자신의 알을 오리의 둥지에 넣었습니다. 어미 오리는 자신이
품이 알이 모두 제 새끼라고 여기며 어서 빨리 부화되기만을 바랬습니다. 이윽고
아이들이 태어나는데 한 마리는 아무리 보아도 형제들과는 달랐고 울음소리도 괴
상하게만 들렸습니다. 오리들은 그 형제를 미운 오리 새끼라고 불렀습니다. 나중
에 미운 오리 새끼는 우연한 기회에 자신이 오리가 아니라 하늘을 나는 아리따운
백조의 무리임을 알게 되었고 형제들과 이별한 다음 새로운 세계를 향해서 힘찬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인 밀과 가라지의 비유를 묵상하면서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미운 오
리 새끼의 동화가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들은 하느님의 농장에서 자
라는 밀로서 풍성한 수확을 드리기 위해서 노력해야만 합니다. 물론 [씨를 뿌리
는 이는 사람의 아들이요, 밭은 세상이고, 좋은 씨는 하늘나라의 자녀요, 가라지
는 악한 자의 자녀, 그리고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요, 추수 때는 세상이 끝
나는 날이요, 추수꾼은 천사들](마태 13,38-39)임을 전제할 때 밀이 자라게 하는
분은 바로 하느님 아버지이십니다.
농사를 짓는 농부는 그것이 밀인지 가라지인지가 분간할 수 있겠지만, 밭에 심
겨져 있는 밀과 가라지는 이것이 내 형제인지 아닌지가 아리송할 수밖에 없을 것
입니다. 마치 미운 오리 새끼가 어미와 형제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듯, 가라지는
밀로부터 무슨 형제가 저러냐며 구박을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나는 주님의 텃밭에 좋은 밀 씨가 되어야 하며, 지금도 그렇
게 살고 있는 거야!] 라고 하며 자만에 찬 생활을 하겠지만, 상대방들을 바라보
면서는 [무슨 밀 형제가 저래? 저것 혹시 가라지 아냐?] 라며 서로를 헐뜯는 일
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가 형제들이 가라지가 되어 추수를 하는 천사들의 손에 이끌려 불타는 구
덩이 속으로 던져지게 되기를 바랄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라는 선물이 우
리들에게 가져다주는 것이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와 생명이듯, 아직은 밀인지 가
라지인지를 구별하기 힘든 상대들을 가리켜 [서로가 가라지]라고 외치는 비생산
적인 싸움인 벌이지 않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세상의 삶이란 것이 우리들을 무한 경쟁의 모습으로 끌어가는 것이 사실이겠지
만,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살피노라면 하느님 앞에서 [영원한 밀도, 영원한 가라
지]도 존재하지 않음을 반성할 수 있습니다. 늘 우리들을 기다리시는 주님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꿇어앉아 당신을 향해 다가갈 수 있는 굳은 믿음을 청하는 것은
주님의 자녀들이 가져야할 첫 번째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멘.
선환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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