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8월9일 독서 복음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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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한구 | 작성일1999-08-02 | 조회수3,450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8월 9일 연중 제9주간 월요일 독서묵상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라시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모세는 하느님을 경외하고, 하느님이 보여주시는 길만을 따라가며 그를 사랑하는 것이며,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쏟아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우리들은 "네, 그렇습니다. 물론입니다."라고 대답할 겁니다. 그러면 하느님을 경외하고, 하느님이 보여주시는 길만을 따라가며 마음과 정성을 다 쏟아 하느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실천의 길은 무엇일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연히 가난한 사람들과 억압받는 사람들의 인권을 생각했지요. 아무 권리가 없었던 고아나 과부들의 인권을 세워주고, 불이익과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떠돌이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입을 거리를 마련해 주는 걸 생각하였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가난하고 억압받고 있을 때, 하느님이 자신들을 가난과 억압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셨고, 광야에서 떠돌 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마련해주셨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살만하게 되면 과거를 잊어버리고, 없던 사람들이 부자가 되면, 없는 사람들을 더 무시한다는 말이 있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정착하여 제법 잘 살게 되자, 함께 고생한 동족 중 가난한 사람들을 무시하고 억압했답니다. 그럴 때마다 예언자들은 "너 이스라엘아 너희 주 하느님께서 너희들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이냐?"고 백성들을 질책했지요. 이스라엘이 가난하고 억압받았을 때를 생각하고, 하느님이 그들에게 해주신 일들이 생각하여, 이스라엘도 하느님이 그들에게 해주셨던 것처럼,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인권과 권리를 존중해 주라는 뜻이지요. 그것이 하느님을 경외하고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길이였답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 하느님은 우리들에게 참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지요. 하지만 우리들은 하느님이 우리들에게 바라시는 걸 얼마나 실천하면서 살고 있는 걸까요? 복음묵상 오늘 복음은 성전세에 대한 논쟁입니다. 마태오 복음에만 나오는 내용인데요. 아마 유대인 그리스도교 공동체였던 마태오 공동체에서는 성전세를 바쳐야 되는지, 바치지 말아야 되는 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성전이 파괴된 70년까지는 모든 유다인 성인들은 성전세를 바쳤었는데요. 예수님 부활이후 독자적인 공동체를 형성하였던 그리스도 공동체에서는 성전세를 바쳐야 하는가, 바치지 말아야 하는가가 문제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때 공동체의 입장은 세상의 스캔들을 피하기 위해서 성전세를 바치자는 입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태오는 이 문제를 예수님께로 소급시켜서 해결하고자 했던 것 같은데요. 예수님은 세상의 임금이 자기 자녀들에게서 세금을 받지 않듯이, 하느님의 자녀들이 하느님께 세금을 바칠 필요가 없지만, 세상 사람들과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 성전세를 냈다고 기록함으로서, 신도들도 예수님처럼 세상 사람들과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 성전세를 내자고 말하고 있는 거지요. 그러면 예수님은 진짜로 성전세를 냈을까요? 우리들은 그러한 사실을 역사적으로 확인 할 길은 없지만, 예수님의 행동과 말씀하신 바에 따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인데요. 아마 예수님은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이 세금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박탈당한 사람들의 권리를 세워주는 거라는 입장에 더 충실했던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성전세를 내고 정결례를 지키는 것 보다, 가난한 사람들에 쏠린 하느님의 관심과 하느님의 뜻을 채우는데 더 많은 관심을 집중하도록 이끄셨던 것 같습니다. 오늘도 함께 하소서 예수님, 하느님께는 우리들에게 무엇을 바라실까요? 착하게 살고,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의무를 잘 지키면 그것으로 만족스러운 걸까요? 하지만 예수님 당신이 보여주신 길을 보면, 우리가 착한 것만으로, 신앙생활에 열심이고 의무에 충실한 것만으로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바라는 바를 채우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 당신은 제도가 정하는 것에 충실하기 보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에 충실하도록 우리들을 이끄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진정으로 바라시는 것은 헌금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과 권리를 박탈당하는 사람들의 인권을 세워주고, 그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옹호해주는 일입니다. 이스라엘과 예수님을 통해서 드러난 하느님의 관심과 사랑은 가난하고 보호받지 못하고 떠도는 사람들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저희들인 사회적이고 종교적인 의무를 다했을 지라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진정으로 바라시는 의무까지 다 채울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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