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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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선환 | 작성일1999-08-12 | 조회수3,161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 여호 24,1-13; 마태 19,3-12
성 이냐시오는 우리들이 하느님과의 완전한 일치를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며 그 삶은 하느님의 보다 크신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사제직무의 길을 가고자 준비하는 신학생들은 그 과정의 거의 마지막 시기인 부 제품을 받기에 앞서서 한 달 동안의 대침묵 피정을 통해서 그 동안의 삶을 반성 하고 하느님만을 모시며 살아가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다지는 기회를 갖게 됩니 다. 그 과정의 일환으로 서울대교구에서는 [이냐시오 영신수련]이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냐시오 성인이 주창한 묵상의 방법 가운데 가장 크고 첫째가는 원칙이 바로 우리들의 모든 삶이 [하느님의 보다 크신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떤 자세를 통해서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하느님의 영광 을 드러낼 수가 있는 것일까요? 사람이 태어나서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가는 방법이 다양하듯이, 하느님의 나라에서 누릴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우리 신자들에게 있어서도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할 수 있는 삶은 참으로 다양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치 세상에 태어나는 아이들이 얼굴을 비롯한 외모와 성품과 심성이 다양하듯, 하느님 나라를 향한 삶도 개인의 차이만큼이나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직업과 성품, 인생의 경험과 지식, 내적인 판단과 외적인 조건, 인생의 목표와 의식 등이 우리들의 삶의 모습들이 달라지도록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지도자들은 오래 전부터 이러한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 다양성 가운데서도 하느님 아버지와의 완전한 일치를 위해서 먼저 공동체 구성원간의 상호 일치에 관해서 이야기하면서,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라는 표현을 사용해 오곤 했습니다.
생전 처음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 마음의 일치를 기대하기 어렵듯이, 똑같은 말 씀을 들으며 살아가고는 있지만, 인생의 모습을 결정짓는 개개인의 여러 가지 잣대가 사람으로 하여금 하느님의 말씀에만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에 방해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하느님과의 일치를 지향하는 의지가 이 땅 위에서는 사람들과의 일치 안에서 드러나게 된다는 데에 의견을 같이 하면서, 개인의 신분과 생활 방식을 초월해서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느님께 자신의 여건과 마음과 심성 그 모든 것, 곧 인간 전체를 봉헌하는 가운데 하느님과의 일치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사람들과의 일치, 나아가 하느님과의 일치는 상호간의 일 치를 지향하는 마음의 문제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는 작은 결론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인종과 성별, 연령과 신분의 차이를 초월하는 이 마음의 문제에 눈을 뜰 수 있을 때 우리들 가운데 다가오는 하느님의 나라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는 것은 아닐는지요?
아멘.
선환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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