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8월23일 독서 복음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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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한구 | 작성일1999-08-18 | 조회수2,568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8월 23일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독서묵상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영적인 여정을 회상할 때, 어떤 단어가 떠올랐을까요? 아마 사랑을 받고 있다는 단어와 선택받았다는 단어가 아닐까요. 바오로 사도는 신앙공동체가 사랑받고, 선택받았다고 하는 확신을 가지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 우리 인생을 되돌아보고, 우리의 영적 여정을 되돌아 볼 때, 우리들 가슴을 따뜻하게 하고 진하게 감동시키는 단어는 우리 자신들이 사랑을 받고 있고, 선택을 받았다는 느낌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우리들이 지금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말했는데요. 우리가 사랑 받고 있고, 선택을 받았음에도 감동하지 못하는 까닭은 우리가 아직도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가 사랑 받고 있고, 선택받았음을 방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은 자기비하, 자기 부정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사랑 받을 만한 사람이 될 수 없고, 누구에 의해서 선택되고 받아들여질 만한 가치가 없다고 자신을 비하하고 부정하는 마음이지요. 이러한 자시 비하, 자기 부정은 우리가 자라면서 비교되고 경쟁하면서 학습된 것인데요.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어머니 태에 생기기도 전부터 우리를 선택해주시고,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말씀하시지요. 나 자신이 누군가로부터 충분히 사랑을 받고 있고, 누군가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을 느껴보십시오. 그리고 하느님이 그 이전부터 나를 사랑하시고 선택하셨음을 느껴보십시오. 우리는 갑자기 가슴 뭉클해지고, 우리 자신의 귀중함을 깨닫게 될 테니까요.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는데요. 감사는 점점 더 큰 감사함으로 우리를 이끌고 갑니다. 복음묵상 오늘 복음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위선에 대한 책망인데요. 이 말씀들은 초기 교회와 유대교 회당 사이에 있었던 대립을 반사합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생겨난 새로운 기독교운동은 먼저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되어, 점차로 변두리 농촌지역과 이방인 지역으로 퍼져나가게 되었는데요. 오늘 복음은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멸망된 이후, 유대교 회당과의 긴장과 대립을 반사합니다. 예수님과 직접 대립했다면 아마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보다 성전 사제들이었을 텐데요. 오늘 복음에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을 책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멸망하기 전에는 예루살렘 성전 사제들이 유다사회를 주도했었는데요. 로마군에 의해서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폐허가 된 이후에는 사제들의 기능도 상실되었지요. 따라서 지역 회당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답니다. 유대교 회당은 바리사이파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이후부터 유대 랍비전통이 생겨나게 되었는데요. 새로운 그리스도교 운동이 시작되었을 때, 선교사들은 처음에는 유대교 회당에서 새로운 운동을 전파했지요. 따라서 유대교의 박해가 필연적으로 따랐었고, 특히 유대교 회당의 지도자들이었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심한 박해를 견디어 내야만 했었답니다. 새로운 그리스도교 운동의 관점에서 본다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이러한 행동이 위선적일 수 밖에요. 그리스도교 운동이 시작된 지 2000년이 지나면서요, 그리스도교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고 힘있는 종교로 발전하였는데요. 초기 그리스도교 운동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위선을 책망했던 이 말씀을 이제 그리스도교 자신에게 돌려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우리 자신들에게 이렇게 반문해 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과연 세상과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끌고 있는 걸까?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뜻과 예수님의 정신에 충실하고 있는 걸까? 오늘도 함께 하소서 예수님, 저희들은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그리고 타인에 의해서 얼마나 받아들여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느껴보고 싶습니다. 어렸을 때는 사람들에게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사랑을 받고 자랐지요. 그리고 성장하면서도 우리들은 사랑과 관심으로 자라났답니다. 어른이 되어서는 사람하는 사람에 의해서 선택받고, 사랑을 받으면서 인생의 아름다움을 배우고 키워나가고 있지요. 하지만 이처럼 우리들은 끊임없는 사랑과 받아들여짐 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왜 우리들은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과 선택받았다는 느낌이 없이, 자신을 부정하고 자신을 비하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예수님, 당신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셨듯이, 부모님들이, 어른들이, 친구들이, 사랑하는 연인이 우리를 사랑하고 선택해주기 훨씬 이전부터 하느님은 우리를 선택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마치 그 사랑과 선택은 공기와 같아서 우리들이 그 속에서 날마다 숨쉬면서 살고 있지만, 공기를 미처 의식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 저희들이 하느님께서 우리들을 사랑하시고 선택해주셨다는 벅찬 감정을 느끼면서 살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가 충분히 사랑받는 존재들이고 선택받은 귀중한 존재들이기에, 우리 자신과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게 하여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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