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느님 앞에 거룩하고 흠없는 사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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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선환 | 작성일1999-08-25 | 조회수3,501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연중 제21주간 목요일 <하느님 앞에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 1데살 3,7-13; 마태 24,42-51
두 분 노인에 대한 기억이 있습니다. 한 분은 일흔을 바라보는 연세에도 늘 정
해 놓고 일을 하시는 성실파였습니다. 성당을 지키고, 문단속을 하고, 청소를 도
맡아하는 것이 그분의 일이었는데 한 번도 요령부리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습
니다. 하물며 당신의 몸이 아파서 쓰러질 지경임에도 불구하고 애써 일하시는 모
습을 보면서 다른 신자들이 말려야할 정도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분의 모습을 바
라보면서 늘 기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분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
었는데, 새벽 일찍 일어나서 성체조배를 하셨고, 시간이 생길 때마다 성체 앞에
서 기도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으셨습니다. 처음 뵈었을 때보다는 훨씬 수척해
진 때에도 늘 변함없는 그분이 크게 생각되었습니다.
또 다른 노인에 대한 기억이 있습니다. 같은 노인이라고는 하지만 얼굴에는 늘
불만과 근심이 함께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술을 좋아하셔서 밤새도록 성당을 지
켜야했음에도 불구하고 술에 취해서 자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술을 마신 밤에
는 그분 곁에 가지 않는 편이 낫다는 것이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었습
니다. 불친절했고, 겸손하지 않아서 만나는 사람마다 그분에 대한 불평을 이야기
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에는 사제 앞에 두 무릎을 꿇고 강복 받기를 원했지만
살면서 체험한 모습은 그런 겸손이나 순명과는 거리가 먼 모습일 뿐이었습니다.
우리들은 주님 앞에서 성실한 삶을 살았던 첫 번째 노인의 경우처럼 살아가고
싶을 것입니다. 두 번째 노인처럼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인생을 살고픈 사람
은 아무도 없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시듯이 하느님과 자신이 맡은 바 소명에 충실하고, 지혜롭고 책임감이 있어서
주님의 종으로서의 삶을 기쁘게 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쉽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쩜 우리들이 했던 경험과 가지고
있는 체험의 보따리가 너무 무겁고 복잡한 것은 아닌지 궁금해집니다. 해야할 일
이 많은 사람일수록, 그리고 하고자 하는 욕망이 강한 사람일수록, 생각이 복잡
해지고, 복잡해진 그만큼 정리하기 힘든 혼돈의 삶을 살아가기 쉬운 일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잔머리를 굴리고 잔재주 부리는 것에 이골이 난 경우가 많아서 그
런 처사가 당연하다는 듯이 생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생활이 이어질수록
하느님 앞에서 충실한 삶과는 점점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오늘 복음의
결론입니다.
오히려 우직한 모습이지만 사실을 단순화시키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라야 당면한
문제 앞에서 [해야할 일인가? 포기해야할 일인가?]를 쉽게 결정할 수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주
님 앞에 충실한 사람이야말로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자신을 아는 사람들
에게도 살아가는 보람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감히 말하건대, 신앙이라는 것은 바로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 그리고 나와 이웃
과의 관계를 [사랑과 정의에 대한 충실]이라는 가치관을 갖고 꾸려나가는 살림살
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 것에 대한 경험이 풍부한 노인이 될수록
이순(耳順)과 대천명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앞서 예로 들었던 두 가지의 모습이
모두 가능한 것이라면, 하느님께 대한 순명과 충실은 이 세상을 마감하는 그 날
까지 변해서는 안돼는 것이라고 알고 있어야만 하겠습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우리를 가리켜서 주님께서는 당신 앞에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아멘.
선환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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