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9월3일 독서 복음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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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한구 | 작성일1999-09-04 | 조회수2,755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9월 3일 금요일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독서묵상 가난하게 살기로 유명했던 그리스 고대 철학자 디오게네스에게 친구가 방문하였습니다. 찬바람을 뚫고 온 친구의 머리와 눈썹에는 흰눈이 싸여 있었지요. 디오게네스는 벽난로의 훨훨 타는 장작불을 가리키며 친구에게 말했지요. "여보게 친구 어서 오게 여기에 하느님이 계신다네." 오늘 독서는 예수님은 만물에 앞서 계셨고, 만물을 꿰뚫어 계심을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신만이 가지는 속성인데요. 골로사이서가 쓰여지던 시기에 벌써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교리가 완전히 확립되었음을 보여두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그 내용은 사도신경과 일치를 이루는데요. 예수님은 하느님과 본질이 같으신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만물은 그분을 통해서 생겨나고 존속합니다.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서 하느님과 인류를 다시 화해시켜주셨다는 신앙고백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내용의 신앙고백을 주일과 대축일 때마다 하고 있지요. 하지만 만물을 앞서 계시고, 만물을 꿰뚫어 계시는 예수님을 우리는 어디서 발견하고 있는 걸까요. 어떤 사진 작가는 예수님의 모습을 카메라에 한 번 담는 게 소원이었지요. 그런데 그 사진작가는 어느 날 눈이 많이 내린 날 사진을 찍으러 갔다가 사고를 당해 죽고 말았답니다. 다행히도 그의 카메라는 온전했는데요. 사진작가의 친구는 그 친구의 필림을 꺼내 현상하다가, 무엇을 찍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사진 한 장을 발견하게 되었답니다. 사진은 눈 덮인 나무가지들을 찍은 평범한 장면이었지요. 아무 장면이나 함부로 카메라 셔터를 누리지 않는 친구의 습관을 잘 알고 있던 그 친구는, 친구가 무엇을 보고 이렇게 급히 셔터를 눌렀을까하고 골똘히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현상해놓은 사진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보여 깜짝 놀랐다고 하는데요. 죽은 친구는 우연히 눈 덮인 세상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발견하고 급하게 셔터를 눌렀던 거지요. 우리에게 볼 수 있는 눈이 있고, 세상 만물을 경이로움으로 대한다면, 아마 우리들도 세상만물 속에 숨어 계시는 예수님을 만나 뵐 수 있지 않을까요. 복음묵상 오늘 복음은 단식에 대한 논쟁입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 "왜 당신네들은 단식을 하지 않습니까?"라고 묻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제자들은 왜 단식하지 않습니까?"하고 묻는 것을 보면, 아마 이 단식논쟁은 초기 교회의 단식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 사람들의 질문에서 보여지듯이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리파 사람들은 단식을 했지요. 요한은 원래 금욕적인 생활로 유명하였고요. 바라사이파 사람들은 화요일과 목요일에 단식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공생활 동안에 예수님은 사람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고 잔치를 즐기셨지요. 예수님의 이러한 모습이 사람들에게는 스캔들이 되었던 것 같은데요. 단식도 지키지 않고, 먹고 마시고 즐기는 예수님을 사람들은 쉽게 경건한 생활을 모르는 건달로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혼인잔치에 온 신랑의 친구가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 단식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물으십니다. 사람들은 "물론 안되지요."라고 대답할 수 밖에요. 예수님은 이렇게 단 한마디의 질문으로 사람들의 편견을 통쾌하게 날려 버리셨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혼인잔치로 비유하셨고요, 이미 하느님 나라는 이 땅에서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잔치, 잔치, 잔치를 즐기셨고, 삶을 경축하셨지요.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돌아가시자, 다시 단식을 시작하였답니다. 초기 교회는 유대교와 달리 수요일과 금요일을 단식일로 정하고 지켰는데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요? 현대 의학은 가끔 우리에게 단식을 하도록 권장합니다. 건강에 좋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오늘 단식논쟁을 통해 내가 단식을 하고 있나 않나를 따지기보다는, 예수님처럼 우리 안에 시작된 하느님 나라를 얼마나 경축하는지, 그리고 우리 삶을 얼마나 경축하면서 살고 있는지를 묻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함께 하소서 예수님, 당신께서는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깨달으셨습니다. 당신의 시선에서 하느님 나라는 세상 어디서나 펼쳐져 있었고,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고개만 돌린다면 곧 발견할 수 있는 세계였지요. 그래서 당신은 하느님 나라를 축하하기 위해서 잔치를 즐기셨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하느님 나라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단식을 하고, 고행을 하면서 하느님 나라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그들은 오히려 당신을 먹보요, 술쟁이라고 비웃었습니다. 예수님, 저희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저희들도 일상생활과 습관 된 생활에 젖어있어서, 저희 자신들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들은 역시 하느님 나라를 경축하고, 우리 자신의 삶을 축하하지 못하고 사는 것보다는 단식제를 지키지 못한 걸 더 두려워하고 있으니까요. 예수님, 저희들이 식사를 줄임으로서 그 줄인 양을 굶주린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일은 꼭 필요한 일입니다. 저희들이 계율로서 단식에 얽매이기보다는, 우리 안에서 시작된 하느님 나라를 경축하고, 우리의 삶을 축하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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