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 23 주간 목요일(9월 9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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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창열 | 작성일1999-09-08 | 조회수2,747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연중 제 23 주간 목요일 (루가 6,27-38)
예수님의 [평지 설교]는 세상의 법칙과 전혀 다른 가르침처럼 들립니다. "원수를 미워하는 대신 사랑하고, 저주하는 사람을 축복해 주고, 학대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한쪽 뺨을 치면 다른 쪽 뺨을 돌려 대 주고, 겉옷을 빼앗으면 속옷마저 내 주며, 빼앗는 사람에게 다 내어 주고, 남이 바라는 대로 다 해 주라."는 어찌 보면 어리석은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바로 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 그대로입니다. 하느님은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을 가리지 않고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따르려면 "하느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신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도달하고자 하는 완덕(完德)은 완전한 자비와 사랑의 실천입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부분적이고 부족한 자비와 사랑의 실천만을 행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이런 하느님의 절대적인 자비와 사랑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절대적인 자비와 사랑에 이르는 것은 도대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절감하게 됩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서로 부족함을 내세워 비판하거나 단죄하는 못난 짓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허물을 지니고 있으므로 서로의 모자라고 부족한 점을 지적하고 비난하고 단죄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자기한테 잘 해 주는 사람에게 잘 해 주는 것은 칭찬 받을 일이 못됩니다. 신앙인은 뭔가 달라도 달라야 합니다. 보다 큰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큰사랑이란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과 나에 대한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 이런 것을 생각해 보면 내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지를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나의 모든 죄와 허물을 용서하시는데 내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데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나를 믿어 주시는데 내가 다른 사람을 못미더워 해서 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나를 비판하거나 단죄하지 않으시는데 어찌 내가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구약의 토비트는 늙어서 자기 아들에게 "네가 싫어하는 일은 아무에게도 행하지 말아라."(토비 4,15)고 가르쳤습니다. 유대인 랍비 힐렐은 말하기를, "네가 싫어하는 일을 이웃에게 하지 말아라. 이것이 모든 법의 중심이다. 그 외의 것은 이 계명을 풀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들도 "다른 사람이 그대에게 행하는 것이 싫다면 그대는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행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방안의 난로에 조심스레 간직해야 하는 꺼질 듯한 불씨가 아닙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불은 점점 더 강하게 타오르는 불이며 결코 꺼지지 않는 불입니다. 이 사랑의 불씨가 내 안에 활활 뜨겁게 불타오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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