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극진한 사랑을 보였으니 그만큼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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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선환 | 작성일1999-09-15 | 조회수2,012 | 추천수9 | 반대(0) 신고 |
연중 제24주간 목요일 <극진한 사랑을 보였으니 그만큼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1디모 4,12-16; 루가 7,36-50
이젠 제법 가을다운 그런 하늘과 날씨를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한 낮의 더위는 아직도 남아있지만, 그래도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결
은 가을의 향기를 전하는 것 같고 기온도 많이 낮아진 것 같습니다.
올 가을은 예년의 가을보다는 많이 짧을 거라고 하지만, 그래도 가
을이라고 하면 우리들은 왠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런 생각들 중에 혹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생각이 있습니까? 아
니면, 미운 사람이나 용서 못하는 사람에 대한 생각이 많습니까? 사
랑하며 살아가기도 너무 부족하고 짧은 이 시간인데,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미워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잠시나마 생각했으면 합니
다. 용서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은 아닌지 생각했으면
합니다.
오늘의 복음 말씀은 罪의 용서와 사랑과의 긴밀한 관계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즉 사랑한 만큼 용서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거꾸로 생각해 보면 사랑하지 않은 만큼 죄가 많다는 말입니다. 직
접적으로 죄를 짓지 않았다 하더라도, 서로 사랑하지 않는 모습 역
시 罪라는 것입니다.
罪는 근본적으로 사랑과 반대되는 것입니다. 나의 관심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에게 애써 무관심한 것, 나태함
과 안일에 빠져 사랑을 하지 못한 것, 내 문제와 고통에 집착하여
형제와 이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이기주의와 교만으로 형제나
이웃 앞에서 우월감을 가지는 것, 미워하고 복수할 마음을 품는 것,
책임과 정당성이 결여된 본능적 행위들, 공동체에 분열과 파당을
조성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은 사랑에 반대되는 것이고, 따라서
죄가 되는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랑함으로써 용서받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용서란 ’죄가 없어졌다고 간주하자, 죄가 없어졌다고 생각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죄가 없어진 원초의 순결한 상태, 즉 神적인
무죄상태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해 주신 맨 처음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용서란 새로운 창조를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용서한다는 것은 새롭게 시작하자는 것이죠. 내가 용서함
으로써 상대방이 새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입니다. 또
한 용서한 나 자신 역시 상대방과의 관계를 새롭게 다시 시작하자
는 그런 의미인 것입니다. 과거의 잘못을 기억하면서 언제든지 그
사람의 잘못을 되새겨내며 미워하고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나와의 관계를 새롭게 다시 시작함이 용서이며, 그것은 바로 사랑
입니다.
우리는 지금 사랑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지금 용서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미워하는 마음을 가슴 속 저 깊은 곳에
감추고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입니까? 우리는 사랑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노력하면 용서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고, 사랑의 마음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가족과 이웃과 형제의 미워함을 말끔
히 씻으려고 하고, 용서하려고 함으로써 우리는 그만큼 순결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우리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김으로써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고 서로가 조금씩 이해하고,
조금씩 내어줌으로써 사랑하도록 해봅시다. 아멘.
선환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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