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실과 사랑과 기도로써 하나되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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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선환 | 작성일1999-09-18 | 조회수2,446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 <성실과 사랑과 기도로써 하나되자> 지혜 3,1-9; 로마 8,31ㄴ-39; 루가 9,23-26
오늘은 우리 나라의 성인들을 기념하고 기리는 뜻깊은 날입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그 동안 양적 질적으로 많은 발전을 거듭해 왔습니다. 현재
우리 나라의 신자수는 300만 명을 헤아린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처음
우리 나라에 천주교가 전래된 것은 1700년대 말이었습니다. 이승훈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은 것이 1783년이었고, 그 이듬해에 교리서, 고상,
상본 등을 갖고 귀국하였습니다. 이승훈을 비롯해서 이벽, 정약전,
정약용, 권일신, 최창현, 최인길, 김종교 등 많은 사람들이 한 마음이
되어 명동 명례방에서 사람들을 모아 교육을 시키면서 가성직제도
하에서 종교생활을 해나가게 됩니다. 중국인 주문모 신부님이 들어오기
까지 약 1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는데, 그 동안 한국 교회의 신자수는
무려 4천 명으로 불어나 있었습니다.
순교자들이 남긴 일기문이나 조선왕조실록 같은 기록들을 보면, 우리
순교자들이 나라에서 천주교를 금지하는 금령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신앙을 지켰던 이유가 어디에 있었는가 하는 점들을 헤아
려볼 수가 있습니다.
당시는 유교 사상이 조선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직자나 선교사조차 없는 가운데 4천 명이나 되는 교우들이 있었다는
것은 우리 선조들의 신앙 생활이 그만큼 철저했다는 것을 뜻하고, 우리
선조들이 당시 조선 사회에서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다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여집니다. 그랬기 때문에 폐쇄적인 당시 사회에서도 그만
한 신앙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교우들이 다달이 반장 교육을 받거나, 레지오 기사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비자 교리반이 항상 개설되어 있어
서 전문적인 강사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교리서가 잘
보급되어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천주교의 교리를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 누갈다의 동생 이경언의 옥중 일지에 의하면 이런 점들을 엿볼 수
있습니다. 관장의 문초를 받은 사실에 대해서 전하고 있는 정해년의
일기에 의하면 교리를 배운 책을 어디에다 감춰두었느냐는 관장의 물음
에 이렇게 답하고 있습니다: [책은 본디 없으니 전부 말로 배워 흉중에
책이 있사오며 유형(有形)한 책은 없나이다] 라고 말합니다. 결국 말로
써 배운 교리 내용이 모두 가슴속에 깊숙이 담겨져 있을 뿐이라는 표현
입니다.
한편 그의 누이 이 누갈다의 편지를 보면 비록 말로써 배웠을지라도
얼마나 꼼꼼하게 공부하고 그것이 그들의 신앙이 되었는지를 헤아릴 수
있습니다. 나중에 한국에 파견된 선교사들은 특히 이 누갈다의 서한에
대해서, [신앙과 순결과 순박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이 이보다
더 아름다운 말로 표현된 적이 없다]고 경탄했다고 합니다. 이 누갈다
는 그의 오라버니와 남동생, 언니와 올케까지 모두 다섯 명이 천주교를
믿었다는 죄목으로 처형을 당하게 되는데, 옥중에서 어머니와 올케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일부를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매사에 순명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잘못한 것에 대해서 보속하며,
선행을 함으로써 공을 쌓고, 비록 작은 허물이라도 마치 큰 허물처럼
살펴서 대죄를 지은 것처럼 깊이 뉘우쳐야 합니다. 선을 행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적은 것이라도 반드시 행하고, 하느님께 열심히 기도
드리며 선종할 기회를 얻게 된다면 이를 위해서라도 진실로 통회하고
하느님을 사랑해야만 합니다. 혹시 방심하였다면 빨리 뉘우친 후 열심
히 하느님께 구하면 점점 더 주님께 가까워질 수 있으니 이런 행실을
통해서 주님 대전에서 만날 수 있다면 이것보다 좋은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남을 용서하며 자기를 성찰하고 화목에 힘씀으로써
어머님은 주님의 뜻에 합당한 사람이 되시고, 형님네는 사랑하는
딸이 되시면 아니 좋겠습니까?...]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확신했던 복음의 삶은 입으로만 발설되는 것이
아니라, 행실 그 자체로써 복음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으로는 양반에서부터 상민에 이르기까지, 연령으로는 13살 소년으로
부터 79살의 할머니까지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계급과
신분의 사람들이, 빈부귀천, 남녀노소의 장벽을 넘어서 서로 사랑하며
감싸주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한 형제 자매로서 사랑의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선조들이 극심한 박해 가운데서도 서로 믿고 의지하며
신앙을 잃지 않도록 격려하는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었기에 그토록
수많은 교우들이 죽어갔지만 교회는 오히려 그 뿌리가 깊어지고
튼튼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난세에 영웅이 나듯이 박해 시대에 성인이 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성인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평소의 성실한 신앙 생활이
성인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뜻에서 오늘 우리도 현대의 성인들이
될 수 있고, 또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순교 성인들의 믿음과 삶을 본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복음에 충실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가 걸어갈 수 있는 수많은
인생길 가운데서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누릴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님의 참다운 제자가 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 길을 간다는 것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는 말씀처럼, 사랑의 마음으로 하나되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길임을 우리는 잘 압니다.
미움과 증오와 분열과 싸움으로 어두운 이 세상을 밝게 비추고 장벽을
허물어 서로 하나될 수 있는 길, 더불어 함께 어울려 살면서 구원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은 사랑밖에 없음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선조들이 걸었던 이 길을 지금 우리들도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끝으로 우리는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를
향한 여정을 이어가게 되는 우리들은 온갖 유혹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보다 철저하게 하느님의 뜻을 살아가기 위해서,
항상 기도하는 가운데 하느님 곁에 머물러 있기를 원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이 기도하는 삶으로써 순교의 영광을 입으신
것처럼, 그 후손인 우리들도 기도로써 이 험악한 세태 속에서도 성인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 것이다](루가 9,23-24). 아멘.
선환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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