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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용이냐 형식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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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선환 쪽지 캡슐 작성일1999-10-28 조회수2,758 추천수3 반대(0) 신고

                           연중 제30주간 금요일

                           <내용이냐 형식이냐>

                         로마 9,1-5; 루가 14,1-6

 

안식일법을 지켜야 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뭔가 급한 일이 생긴다는

것은 참으로 곤란하기 그지없는 일이었습니다. 안식일에는 일을 하면 안 된다는

규정을 지키기 위해서 사람들은 1킬로 이상 걸어도 안 되었고, 일을 해서도 안

되었기에 심지어는 끼니를 위해서 음식을 준비하는 것조차 전날 미리 다 해놓아

야만 했습니다.

 

오늘 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바리사이파의 한 지도자 집에 들어가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다고 되어 있는데, 그 지도자가 예수님을 초대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안식일에 과부나 나그네가 배를 곯아서는 안 된다는 규정

을 지키기 위해서 지나가던 예수님의 일행에게 식사를 해도 좋다고 허락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유대인의 지도자였지만 수종 병자가 그의 집에 와 있었다는 것으

로 보아 그의 집에는 예수님의 일행 이외에도 다른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안식일에 음식을 준비하지 못했던 유대인들은 하루 전날 준비한 찬밥

을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평소에는 하루에 두 끼밖에 먹지 않았지만 안식일만

큼은 세 끼를 먹었고, 점심이 가장 풍성하게 차려지게 마련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주님의 날에 주님의 이름으로 수종병자 한 사람을 고

쳐주고자 하십니다. 다른 데서는 먼저 기적을 베푸신 다음 당신을 반대하는 사람

들과 논쟁을 하시지만 이날만큼은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 먼저 그 자리에 모여 있

던 유대인들의 지도자들에게 당신 행위의 정당성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십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는 일이 법에 어긋나느냐? 어긋나지 않느냐?]

 

그들은 이 질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에는 일하지 말고

쉬어라] 라는 규정에 따른다면 분명 안식일법을 어기는 것이 되겠지만, [안식일

에는 착한 일을 하라]는 규정과 생명을 죽이기보다는 살려야 한다는 상식에 비춰

보면 예수님께서 하시는 병 고치는 행위가 결코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었기 때문

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기가 막혀서 말할 수 없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

십니다. [너희는 자기 아들(히브리어로, 베라)이나 소(베리아)가 우물(페라이)에

빠졌다면 안식일이라고 당장 구해 내지 않고 내버려두겠느냐?] 이런 상황에 대해

서 율법은 두 가지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한 가지는 안식일이기 때문에 구해낼

수 없다는 쪽입니다. 우물 속에 떨어진 존재를 건져 올리기 위해서는 [일]에 해

당되는 작업을 해야하고 이것이 안식일법을 어기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안

식일이 지날 때까지 먹을 것만 넣어주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인 것이었죠. 반면

안식일이라도 구해내야 한다는 해석도 있었는데, 예수님 당시에는 바로 이런 해

석이 적용되는 시기였습니다.

 

아마도 율법 교사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것은 이와 같

은 예수님의 지적이 자신들의 지식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안식일임

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구하는 일만큼은 허락하고 있다는 점에서 본다면, 죄로 인

해서 무거운 병을 얻고 생명의 위협을 받는 병자를 구한다는 것이 잘못이라고 말

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런 점을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사람을 위해서 안식일이 존

재하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루가 13장 참조)

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꼭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면 나의 행위가 과연 하느님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려는 마음에

서 출발하고 있는가 하는 점을 성찰하는 것일 겁니다. 율법주의적인 법의 준수에

앞서서 좋은 뜻을 품고 그 뜻을 실천하려는 노력이 훨씬 더 중요한 것임을 기억

하는 일입니다. 내용과 형식 가운데 선택을 해야 한다면, 하느님의 뜻을 살릴 수

있는 내용을 선택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멘.

 

 

                                         선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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